[염성덕 칼럼] 최악의 후보 버리고, 차악이라도 선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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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성덕 칼럼] 최악의 후보 버리고, 차악이라도 선택하자

    • 입력 2022.02.24 00:01
    • 수정 2022.02.26 00:04
    • 기자명 염성덕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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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성덕 논설주간
    염성덕 논설주간

    이태 반 전에 ‘국민일보’에 칼럼을 쓰면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을 소환한 적이 있다. 독일군이 파죽지세로 유럽을 침탈하고 영국 침공을 눈앞에 두었을 때 처칠의 전략과 대응을 묘사한 내용이다. 독일군 기세에 눌린 영국 주화파(主和派)가 협상을 요구할 때여서 처칠의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주전파(主戰派) 처칠은 결사항전의 길을 택했다. 처칠의 외롭지만 단호한 결단은 히틀러의 야욕을 무너뜨리고 유럽을 참혹한 전란의 소용돌이에서 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너무 생생하고 결의에 찬 처칠의 대국민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나오는 처칠의 카랑카랑한 육성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독일에 굴복하면 버킹엄궁과 의사당에 나치 깃발이 휘날린다. 일부는 혜택을 누리겠지만 우리 해군은 무력화된다. 죽음을 각오하고 해안과 들판, 거리와 언덕에서 싸워야 한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는다. 설혹 점령당한다고 해도 연합군이 구할 것이다. 강력한 신세계가 구세계를 구원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영국처럼 우리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요즘 국가의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다. 처칠 같은 불세출의 영웅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지만, 선뜻 국정 5년을 맡길 지도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과거 대선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혼탁하고 혼란스럽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에게는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대선이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지지율은 혼전을 거듭했다.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두 후보의 지지율은 춤을 췄다. 춤사위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막춤을 보는 듯했다.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줄곧 오차 범위 밖에서 지지율 1위를 유지하는 후보가 없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단일화 제안과 제안 철회도 안갯속 구도에 불확실성을 더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아 윤·안 단일화 카드가 물 건너갔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과거 대선 결과를 보면 대체로 D-50일 전쯤에 1위 고지를 선점한 후보가 팡파르를 울리고 청와대에 입성했다. 다만 2002년 대선은 예외였다. 2002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크게 앞섰다. 하지만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한 노무현 후보가 막판에 역전 드라마를 썼다. 정 후보가 투표일을 불과 2시간가량 앞두고 노 후보 지지를 철회했지만 노 후보의 당선을 막지는 못했다.

    이번 대선에서 지지율이 혼조세를 보이는 것은 이재명과 윤석열 본인의 ‘후보 리스크’가 너무 큰 탓이다. 대표적인 것이 이 후보의 ‘대장동 로비·특혜 의혹’과 윤 후보의 ‘고발 사주 의혹’이다. 반드시 소명해야 할 의혹이지만 대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진위를 알 수 없게 됐다. 공직선거법 제11조가 ‘대통령선거 후보자는 후보자 등록이 끝난 때부터 개표 종료 시까지 사형·무기 또는 장기 7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행범인이 아니면 체포 또는 구속되지 아니하며···’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변호사비 대납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옆집 의혹’ ‘형수 욕설 논란’에 휘말려 있다. 윤 후보는 ‘부동시(不同視) 병역 면제 의혹’ ‘처가 부동산 차명 보유 의혹’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의혹’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 수사 의혹’을 받고 있다. 윤 후보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수사팀 모해위증교사 수사 방해 의혹’에 대해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최근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두 후보를 둘러싼 의혹은 상대 진영이나 지지 세력의 정략적 공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일부 의혹에 대한 국민의 눈초리는 여전히 따갑다. 너무 쉽게 말을 뒤집는가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실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두 후보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언행도 자주 구설에 오른다.

    이런 후보들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니 국민은 누구를 선택할지 답답할 뿐이다. 그야말로 오리무중 대선이다. 오죽하면 한때 양강 후보보다 지지율이 훨씬 낮은 안철수 후보나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어떤 면에서 낫다는 평가가 나왔겠는가. ‘특정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른 후보가 더 싫어서’라는 표현이 이번 선거가 최악임을 대변하고 있다.

    두 후보의 배우자 논란도 가관이다. 이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갑질 의전 논란’ ‘약품 대리 처방 의혹’ ‘공무원 사적 유용 논란’을 접한 국민은 혀를 차고 있다. 김씨가 뒤늦게 사과했지만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윤 후보의 아내 김건희씨의 ‘경력 위조 의혹’ ‘논문 표절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도 도긴개긴이다. 호남 주민은 “그 각시들 뉴스를 보면 기가 찬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런 반응이 바로 민심(民心)이다.

    불행하게도 최선의 후보가 없어서 차선의 후보를 뽑는 대선이 아니다. 최악(最惡)의 후보를 뽑지 않기 위해 차악(次惡)의 후보라도 선택해야 하는 대선판으로 전락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 대선이 추문(scandals), 말다툼(bickering), 모욕(insults)으로 얼룩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번 선거는 ‘두 악(惡) 중 덜 나쁜 것에 대한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으로 해괴한 대선이다.

    양쪽 진영의 추종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 후보를 결정했을 것이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과 중도층이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명의(名醫)는 아니더라도 돌팔이 의사만은 피해야 한다. 그래야 덜 나쁜 대통령이라도 뽑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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