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설날 아침에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설날 아침에

    • 입력 2022.02.02 00:00
    • 수정 2022.02.02 13:31
    • 기자명 시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설날 아침에

                                               김종길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 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 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다지만

    그러나 세상은 살만한 곳

    한살 나이를 더한 만큼 

    좀 더 착하고 슬기로울 것을 생각하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1926-2017)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성탄제」 「황사현상」 「하회에서」 외 다수.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및 고려대학교 영문과 명예교수.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또 한 해의 새날인 ‘설’을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벌써 3년째 참으로 어둡고 암울한 역병 속에서 견디고 있습니다. 설이 돌아와도 가족 간의 만남도 제대로 갖지 못하는 세상이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는 언제 옛날 같은 풋풋한 정을 다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설 명절이 되면 장정들은 떡메를 치고 아이들은 연을 날리며 거리를 뛰놀던 그런 풍속이 새삼 그리워집니다.

    또 설날이 되면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설빔이나 때때옷을 차려입고 동네 어른들과 친척 집에 세배를 올리러 다니기도 했지요. 문득 어리던 날 세뱃돈을 받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지전 몇 장을 받아들고 햇덩이 같은 얼굴을 마주 보며 “넌 얼마니? 나는 이만큼이다”라며 서로 자랑하던 우리들의 호주머니 속 그 풋풋하던 추억과 사랑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는 이 시인의 마음처럼 “새해에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라고 조근조근 위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춥고 어려운 시대라도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 쉬고/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이 해야겠지요. 그런데 이 시대적 환란이 너무 오래 가고 있네요. 우리들 목숨 줄을 당기고 있네요. 오늘도 확진자가 1만명을 넘었다고 하니 언제까지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흔히 시인을 일러 예지자, 선지자라고 합니다. 고매한 신성을 지닌 이 시인의 영혼처럼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어린 것들 잇몸에 돋아나는/고운 이빨을 보듯/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만 꿈꾸어 봅시다. 어려움에 처한 많은 자영업자와 일일 근로자들께 이 감상적인 시 한 구절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돌이켜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도 우리는 ‘어린 아기들 잇몸에 돋아나는 새싹’ 같은 희망을 마음속에 심고 살아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 같습니다. 용기는 곧 우리들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