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의 뒤적뒤적] 느긋한 걸음으로 숲을 거닐어 볼까요
  •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성희의 뒤적뒤적] 느긋한 걸음으로 숲을 거닐어 볼까요

    • 입력 2021.11.01 00:00
    • 수정 2021.11.01 14:13
    • 기자명 북 칼럼니스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김성희 북칼럼니스트

    어, 어 하는 사이에 가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 단풍은 예년에 비해 볼품이 없다는 이야기도 솔솔 들립니다. 단풍이 곱든 곱지 않든 나무를 허물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책도 그렇습니다. 나무백과에서 나무에 얽힌 음식 이야기까지 나무를 소재로 한 책은 수두룩하지만 나무의 미덕을, 지혜를 길어낸 책들뿐입니다. 해서 이번엔 나무에 관한 책을 골랐습니다. 나무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나무가 전하는 지혜에 관한 글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짐작하다시피 나무를 소재로 한 에세이 집입니다. 제목은 『숨 쉬러 숲으로』(장세이 지음, 문학수첩)입니다. ‘애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류의 책은 여럿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이 책, 눈여겨볼 가치가 있습니다. 숲이 그렇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분자분 여운이 긴 이야기를 전해주니까요.

    이 책의 미덕은 착함입니다. 사실, 하는 일이 책과 얽힌 일이기도 하고 딱히 내세울 만한 취미도 없는지라 책을 꽤 읽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책의 내용과는 별도로 책에 관한 인상이 남습니다. 이를테면 인문사회과학 책이라면 저자가 독자보다 같은 분야의 이들에게 지식을 자랑하기 위해 쓴 인상이라든가, 주제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 허덕허덕 한다든지 하는 책을 더러 만납니다. 에세이 집이라 해도 공연히 젠체한다든가 마음에서 우러난 글이 아니라 멋진 말이나 유명인의 말로 범벅을 만든 책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책들은 몇 페이지 들추지 않고 바로 내치긴 하지만 말입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부산에서 태어나 사범대학을 마치고는 서울에서 잡지사 기자 생활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15년을 보내고는 숲 해설가 자격증을 따고 제주를 중심으로 숲 관련 일을 하며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그러니 순전히 짐작이지만 치부를 하거나 권력, 명예를 쌓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입니다. 우리 통념으로는 그다지 내세울 것 없는 위치라 하겠죠.

    그래서인지 지은이는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이웃의 오빠 혹은 누나가 조근조근 이야기해 주는 듯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책의 구성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눠 각각 6종의 나무를 소개하는데 각각 경우에 맞는 나무를 골라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지난날이 후회될 때’ ‘더러워진 귀를 씻고 싶을 때’ ‘외모 때문에 움츠러들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갑갑할 때’ 등 우리가 살면서 한두 번 부딪쳤을 법한 좌절, 실망, 고민을 가래나무, 이팝나무, 산수국, 참나무과를 만나 위로와 해법을 찾으라는 귀띔입니다.

    “편히 기대어 살라”(겨우살이), “가장 연한 빛이 가장 밝다”(귀룽나무), “모두의 제때는 다르다”(백목련), “내 아래 내가 쌓인다”(화살나무), “거리가 관계를 지킨다”(후박나무) 등등 각 편에 다뤄진 나무 관련 글의 소제목만 보아도 절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입니다.

    “살다 보면 원치 않은 그늘이 드리울 때가 있다. 누구나 그늘을 좋아할 수는 없지만 견딜 수는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늘은 내력을 키운다. 끝끝내 그늘을 견디면 마음의 근력이 치밀해져 어지간한 외력에는 휘청이지 않는다.”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단풍나무가 전하는 “그늘에도 빛은 스민다”는 이런 글을 만나면 어떨까요? 아니면 직장에서 결과가 시원찮아 힘겨울 때 “잠시 쉬어감이 어떠리”하고 달래주는 감나무의 위로는 어떤지요?

    “나무가 해거리로 더 나은 결실을 위해 숨을 고르듯 나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어린 시절처럼 단감 한 입 베어 무는 여유를 즐기며 다시 곳간을 채우기로 했다”는 구절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마음의 병이 깊어질 때 들춰볼 만한 ‘처방전’입니다. 지은이는 성인이 된 후 ‘세상을 듣고(世耳) 세상을 말하다(say)’란 뜻을 담으려 개명을 했다는데 나무가 전하는 말을 듣고 자신의 삶을 녹여 삶의 지혜를 일러줍니다. 소소한 일상과 어우러진 각각의 글을 읽노라면 ‘일상의 철학자’란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뭐, 철학이란 말에 질색한 분들도 있겠지만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은 한계에 부딪혀 절망하는 이를 위한 벽오동 편입니다. 경복궁에서 접한 벽오동의 ‘날개 달린 씨앗’을 들어 “네게도 날개가 있단다”고 속삭여주거든요.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