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사용설명서] ‘사망률 세계 1위’ 간암, 소리 없어 더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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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 사용설명서] ‘사망률 세계 1위’ 간암, 소리 없어 더 무섭습니다

    • 입력 2021.10.29 00:00
    • 수정 2021.10.29 16:16
    • 기자명 고종관 보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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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관 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고종관 전 중앙일보의학전문기자·보건학박사

    지난 20일은 대한간학회가 제정한 ‘간의 날’입니다.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간 건강을 위해 ABC를 확인하세요’라는 캠페인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A형을 비롯한 B형과 C형 간염바이러스로부터 간을 보호하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학회가 추산한 국내 만성 B형 간염바이러스 환자는 150만여명, C형도 20만여명에 이릅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간암 환자 발생률과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죠.     

    다음은 최근 제가 인터뷰한 간 전문의 얘기입니다. 얼마 전 30대 남성이 내원했다는군요. 환자는 평소 술을 즐겼는데 요즘 소화가 안 되고, 배가 더부룩해 위내시경을 받을까 생각해 병원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단결과, 소화불량의 주범은 위가 아닌 간이었습니다. 이미 간경변증(간경화)에서 간암으로 진행돼 복수까지 차기 시작했으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지요. 

    무엇이 이런 사달을 낳게 한 것일까요. 의사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을 지적했습니다. 

    첫째는 ‘젊음=건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간염바이러스 보균자라도 간 수치가 정상이고, 나이가 젊으면 간암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환자처럼 B형 간염바이러스를 보균하고 있으면서 반복되는 음주로 간이 만성피로에 시달릴 때는 젊은 나이라도 간암을 피해 갈 수 없는 거지요. 게다가 간 수치가 정상범위이거나 간경변증을 거치지 않고서도 간암으로 이행하는 환자가 꽤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즘 의학계에선 ‘건강한 보균자’(healthy career), 또는 ‘비활동성 보균자’라는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고 해요. 간염바이러스 보균자들이 ‘증상이 없으면 나는 건강하다’고 자만하기 때문이랍니다. 

    둘째는 간암이 ‘소리 없이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B형 간염바이러스가 만성간염을 일으키고, 다시 간경변증으로 진행되더라도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니다. 간은 20% 정도만 남아 있어도 기능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기 때문이지요. 간경변증이 한참 진행돼서야 비로소 만성피로와 식욕부진, 복부 불쾌감 정도의 증상이 발현됩니다. 간이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셋째는 확률의 함정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간암 유발인자인 B형 간염바이러스의 경우, 만성간염을 거쳐 간경변증으로 가는 확률은 10% 이내, 여기서 다시 간암으로 가는 확률은 1~3% 수준입니다. 그러니 ‘설마 내가’하며 방치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같은 확률은 일단 암이 발병한 다음에는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간은 회복력이 빠르다’는 말을 맹신하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긴 합니다. 실제 간의 75%를 떼도 나머지 25%가 8~15일이면 원래의 크기로 재생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음주로 간이 피곤하다고 생각되면 ‘쉬면 회복되겠지’ 하거나 간장약을 사 먹으며 자신을 위로합니다. 

    간은 재생력이 매우 뛰어난 장기이지만 이는 간이 건강하고 흉터 조직이 없을 때만 가능한 얘깁니다. 일단 간경화가 시작되면 간의 재생력은 제한되고, 섬유화된 간은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간암을 차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길목은 어디일까요.

    바로 간경변증을 막는 것입니다. 간경변증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간 조직이 섬유화돼 딱딱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상처가 난 피부가 아물면서 흉터가 생기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 과정에서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무한증식하는 암으로 돌변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간암은 ‘예고된 암’입니다. 예고된 암이란 내가 조심하거나 관리하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30대 간암 환자를 진료한 의사가 “지난해에 검사만 받았어도, 또 정기적으로 간 검사만 받았어도···”하며 안타까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간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검사는 다른 암 검사처럼 번거롭거나 비싸지도 않습니다. 혈액검사(혈청알파태아단백검사)와 초음파검사만으로도 충분히 간경변증으로 진행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정부가 무료로 시행하는 건강검진(자기 부담 10%)을 이용해보세요. 40세 이상이면서, 간경변증 또는 B・C형 간염바이러스 보균자와 만성간질환자가 대상입니다. 6개월에 한 번씩 혈액검사와 초음파검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간 전문의들은 고위험군이라면 40세까지 기다리지 말 것을 당부합니다. 의학적 기준보다 개인에 맞는 관리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고위험군이란 간염바이러스 보균자뿐 아니라 술에 의한 알코올성 간염 또는 비만에 의한 지방간 등 비알코올성 환자 등이 포함됩니다. 이 내용은 기회가 되면 별도로 소개하겠습니다. 비만한 사람이 급증하면서 대사성질환도 늘고 있지만 간 역시 크게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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