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덕 칼럼] 정치인의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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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성덕 칼럼] 정치인의 말말말

    • 입력 2021.10.21 00:01
    • 수정 2021.10.22 10:37
    • 기자명 염성덕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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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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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는 제각각 지문(指紋)과 성문(聲紋)이 있다. 지문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모양이 평생 변하지 않는다. 주로 개인 식별, 범죄 수사 단서, 인장 대용으로 사용된다. 성문도 사람마다 고유 형상이 있다. 검찰과 경찰이 성문을 주요 수사 단서로 쓰고 있다. 테러범이나 몸값을 요구하는 납치범은 성문을 숨기려고 변조한 목소리를 쓴다.

    글과 말에는 그 사람만의 특별한 속성이 있다. 글쓴이와 화자(話者)의 인격과 성품도 녹아 있다. 인간 됨됨이와 지적 수준까지 파악할 수 있다. 한순간에 무식한 면모를 만천하에 드러내기 십상이다. 글과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천렵(川獵)에 접미사 ‘질’이 붙어 여야 간에 한바탕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천렵은 냇물에서 고기잡이하는 일을 뜻한다. 복날이나 더운 여름날,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즐기는 놀이다. 어린이도 함께하는 평범한 소일거리다. 문제는 천렵에 ‘질’을 추가해 천렵질이 됐을 때다‘질’은 주로 좋지 않은 행위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역할을 한다. ‘노름질’ ‘서방질’ ‘계집질’ 따위가 그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유럽 3국 순방을 떠나자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이하 당시 직책)이 공식 논평을 냈다. “천렵질에 정신 팔린 사람마냥 나 홀로 냇가에 몸 담그러 떠난 격”이라고 비난했다. 집권 세력이 밉고, 여야 간에 정쟁을 벌이고 싶었던 걸까. 그래도 공당 대변인이 외국 순방에 나선 대통령에게 할 소리는 아니다. 언론인 출신인 민 대변인은 잘못된 표현도 썼다. ‘사람마냥’은 틀린 말이다. ‘마냥’을 조사로 썼는데 ‘사람처럼’이라고 해야 맞다.

    박근혜 대통령은 푸미폰 태국 국왕의 별세 소식을 듣고 영면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태국 국민에 대한 아낌없는 사랑으로, 특히 가장 어렵고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여 깊은 존경을 받아온 푸미폰 국왕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국무총리실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한 태국대사관을 방문해 푸미폰 태국 국왕의 영면을 기원하며 조문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언론사는 너도나도 이 자료를 인용해 영면을 기원한다고 기사를 썼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영면과 기원을 사용한 것이다.

    영면(永眠)은 ‘영원히 잠든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다. 기원(祈願)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빎’이란 뜻이다. ‘영면’과 ‘기원한다’를 함께 사용하면 죽음을 바라고 빈다는 뜻이 된다. 그것도 이미 별세한 사람한테 말이다. 태국 정부와 국민, 유족에게는 해괴망측한 망발이 아닐 수 없다. 태국 정부가 그 뜻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외교 경로를 통해 엄중히 항의했을 발언이다.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국 사태가 불거지자 조국 지지 발언을 했다. 각계에서 ‘조국 사퇴론’을 제기할 때였다. 안 의원은 “조국은 촛불 정권의 상징이다. 사퇴가 아닌 건승을 바란다”고 응원했다. 안 의원은 건승(健勝)에 승(勝)이 있어서 이렇게 표현한 모양이다. 조국에게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잘 싸워서 이기라는 뜻으로 썼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건승은 ‘탈 없이 건강함’이라는 뜻이다. 건승과 건강은 비슷한말이다. 안 의원은 ‘사퇴하지 말고 건강하기 바란다’고 한 셈이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웃기는 말이다. 조국은 페이스북 인사를 통해 “다들 건강 건승하십시오!”라는 덕담을 남겼다. 조국도 건승의 뜻을 모르고 쓴 듯하다.

    대장동 개발 로비·특혜 의혹 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먹고살기 힘든 서민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그런데도 이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 따라 험한 말만 주고받고 있다. 지옥불, 불한당, 불나비, 거짓말, 허위 조작, 이재명 게이트, 국민의힘 게이트, 부패 카르텔, 국민약탈형 부패, 조폭 깡패, 도둑들···. 이루 열거하기조차 쉽지 않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남 탓만 하고 있다.

    정치인의 말은 그 사람의 정치적 위상에 따라 파급력과 영향력이 달라진다. 공당의 간판급 정치인들과 측근들이 제 편의 지지와 결집을 노린 정치공방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대장동 사건의 실체 파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들이다. 정말 볼썽사납다.

    주간조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3%가 ‘대장동 특검·국정조사’에 찬성했다. 반대는 21%에 불과했다. 국민 대다수가 특별검사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탈탈 털어서 의혹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를 엄히 처벌하고, 범죄수익을 국고로 환수하기를 바라고 있다. 오죽하면 대장동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들을 척결하기 위해 전두환을 소환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겠는가. 수사당국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대장동 수사에 임해야 한다. 대선 풍향계를 보면서 알아서 기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미적거리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 여당이나 야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한 수사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에는 결코 꼬리 자르기 수사, 용두사미 수사에 그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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