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가을 산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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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가을 산새
  • 칼럼니스트
  • 승인 2020.10.1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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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산새

 

                              김종해

새끼 네 마리 데리고
산에서 마을로 내려온 가을 산새
가을이 되니까
저녁 햇살이 밥으로 보이니까
우리 집 찔레나무 덤불 속에서
뭐라고 소리치고 있다
서오릉 길 너머
봉산에서 내려온 가을 산새가
뭐라고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다
어린 날 귓속에 쟁쟁 울리는
엄마새 소리
종해야, 죽 먹고 자!
죽 먹고 자!
굶고 자는 아기새 위로
엄마새가 맨 앞에서 날아오르고 있었다

*김종해:1963년『경향신문신춘문예』당선.*시집<신의 열쇠>외.*현재:문학세계사(시인세계)대표.한국시인협회회장역임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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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새」, 참 가슴 찡한 시다. 어린 “새끼 네 마리 데리고/산에서 마을로 내려온” 어미 새다. 여기서 새는 화자가 자신의 ‘어머니’를 상징화 한 것이다. 밥이 넉넉지 않던 시절이다.

들나물, 산나물을 뜯어다가 낟알 몇 톨 넣고 멀겋게 죽을 끓여 내놓던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영상이 겹친다. 눈물 나게 겹친다. 봉평 산골짜기에서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도 그랬었다. 그런 멀건 죽도 넉넉지 못하여 할머니 어머니는 제대로 드셨는지 그것도 아득하다. 6.25 전란 이후는 너나없이 누구나 그런 집이 많았을 것이다. 폐허 속에서, 땅에 숨겨놓고 피난을 떠났던 가재도구와 곡식들이 다 없어졌다고 정지(부엌)바닥에 앉아 통곡하시던 어머니 모습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 시에서 ‘가을 산새’에게는 즉 어머니의 눈에는 “저녁 햇살조차 따뜻한 밥”으로 연상되었을 것이다. “우리 집 찔레나무 덤불 속에서/ 서오릉 길 너머/봉산에서 내려온 가을 산새가/ 뭐라고 다급하게 소리치고 있다” “종해야, 죽 먹고 자!/죽 먹고 자!” 이 구절을 읽는 순간 가슴이 출렁 내려앉는다. 전율이다. 아픔이다. 우리들 어머니가 자식에게 죽이라도 먹여 재우려는 그 애끓는 사랑 앞에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요즘 아이들은 “그렇게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으면 되지?!”라고 한단다. 격세시감이다. 이토록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을 우리 어머니들은 어떻게 견디며 살아내셨을까? 캄캄하다.

하기야, 요즈음 같이 먹을 것이 넘쳐나고 풍요롭다는 대명천지에도 굶어 죽은 사람도 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떠난 32세의 젊은 시나리오 작가 최고운의 죽음이 그것이다. 갑상선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고 있던 그녀는 아프고 배고파서 외롭게 죽어갔다. 그가 남긴 쪽지 편지가 세상을 울렸다.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 같은 세입자 집 문에는 이런 쪽지가 붙어 있었다는 기사다. 이웃이 음식을 챙겨 들고 갔을 때 이미 최고운 씨는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밥은 삶과 생명의 역사다. 그 역사에는 배고픈 사람과 배부른 사람, 두 부류가 존재한다. 요즈음 같이 풍요로운 시대에는 정신적 배고픔, 그 허기가 더 심각하다. 이 허기는 인간을 나약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시처럼 “굶고 자는 아기새 위로/엄마새가 맨 앞에서 날아오를”수 있는 사랑이 있다면 우리의 정신적 배고픔은 얼마든 이겨낼 수가 있다. 그런 날개에는 항상 희생적 사랑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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