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방 의사 부족” 외치다 집단 사직⋯국민 납득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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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지방 의사 부족” 외치다 집단 사직⋯국민 납득하겠나

    [의대 증원, 지역 의대 교수의 두 얼굴]
    강원대병원, "인력 확충 필요" 입장 번복
    교수 삭발식에 이어 25일 집단 사직
    “교육 여건상 불가”⋯ 국민 납득 어려워
    병상 절반만 가동 “이러다 사고 터진다”

    • 입력 2024.03.25 13:02
    • 수정 2024.04.16 00:10
    • 기자명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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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험과 소신에 비춰 의료 인력 확충은 100% 필요하며 지금 해도 늦다.” (남우동 강원대병원장)

    강원대 의대·강원대병원으로 대표되는 강원특별자치도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 전까지만 해도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강원대는 현재 거점국립대지만 의대 정원이 49명에 불과한 ‘미니 의대’이고, 의료 인프라도 전국에서 가장 열악한 편이다. 

    그러나 정부가 전국적으로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강원대 의대 교수들은 180도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 지난 5일 삭발식까지 열었다. 이날 카메라 앞에서 머리를 민 류세민 강원대 의대학장은 올해 1월 대학 홍보 페이지 ‘KNU 뉴스’를 통해 “강원지역은 의료접근성이 낮고 고령화로 인한 잠재적 환자 발생 가능성이 높아 미래 의료자원 확보가 시급하다”며 증원 필요성을 역설했던 인물이다.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한 의료 대란이 춘천에서도 큰 피해를 낳고 있다. 강원대 의대 교수들은 삭발식에 이어 25일 전국 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명의로 단체 사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강원대 의대에 강원대가 교육부에 요청했던 140명보다 적은 132명을 배정했지만, 강원대 병원 측은 ‘(대학의 증원 요청이) 교수들 의견과 다르다’ ‘교육역량 확인이나 학생들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등의 이유로 결사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의료 인프라 개선을 위한 의대 증원을 스스로 요구해왔던 이들의 갑작스런 입장 변화는 일반 국민들이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5일 강원대 의대 앞에서 류세민 강원대 의대 학장(사진 왼쪽)을 비롯한 강원대 의대 교수들이 삭발식을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5일 강원대 의대 앞에서 류세민 강원대 의대 학장(사진 왼쪽)을 비롯한 강원대 의대 교수들이 삭발식을 진행했다. (사진=연합뉴스)

    ▶의사 부족하다더니⋯증원 발표되자 ‘결사반대’

    강원대병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 의료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의대 증원이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주진형 전 강원대병원장(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지난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후년 환갑인 저도 대기 당직을 서야 할 정도로 의사 수가 부족한 게 강원대 병원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남우동 강원대병원장 역시 의대 증원 확충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지금 의대 정원을 확대해도 현장에 배출되는 시기는 10년 후”라며 “경험과 소신에 비춰 의료인력 확충은 100% 필요하며 지금 해도 늦다”고 했다. 남 원장은 의료대란이 벌어진 이후 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의사의 갈등은 전공의(병원 수련 2~5년 차) 집단 사직에 이어 의대 교수들까지 합세하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강원자치도에 따르면 25일 기준 강원지역 9개 수련병원에서 사직한 전공의 수는 362명(92.8%)이다. 강원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6일 “개별적 사직서 제출에 동의한다고 밝힌 교수가 73.5%였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21일 전병왕 보건복지부 의학교육점검반장이 의대정원 확대 관련 전국 40개 의대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지난해 11월 21일 전병왕 보건복지부 의학교육점검반장이 의대정원 확대 관련 전국 40개 의대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수요조사 입장 바꿔⋯ “의사 밥그릇 싸움” 여론

    정부는 2000명 발표 이전 전국 의과대학 연합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 의과대학 증원 수요조사 결과를 반영했다. 지난해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2025학년도 의과대학 증원 수요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학별로 2151~2847명 증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2000명 증원 안을 제시한 직후 전국적으로 의대생 동맹휴학과 전공의 집단 파업이 시작되자 협회는 입장을 번복했다. 지난달 19일 협회는 성명서에서 “교육 여건을 고려할 때 2000명은 단기간에 수용하기 불가능한 숫자”라고 했다.

    의사들은 “의대 증원은 장기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증원 요구 때는 언급 않던 교육 여건을 거론하며 “(의대 증원이)의학교육 수준을 후퇴시킬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의대 정원으로 의사 수가 늘면 지방의 의료 여건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과거 자신들의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이 강원을 비롯한 필수 의료인력이 부족한 지역 의료계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낙후된 지방 의료 인프라를 의사 증원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일 발표된 지역별 증원 현황도 지역에 80%(1639명) 이상을 배정했다. 이밖에 성형외과, 피부과 등 인기과로 지원이 쏠리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의사 공급을 늘려 경쟁을 유발, 필수과목의 지원을 늘리는 점(낙수효과)도 주요 근거다.

    최근 의사 출신 이채훈 서울북부지검 검사는 검찰 내부망에서 “의사들의 속칭 ‘밥그릇 싸움’에 국가가 두 손 들고 물러난다면 의사 집단 아래 대한민국이 놓이는 형국이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다수 일반 국민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강원대 병원(사진 왼쪽), 한림대 병원 전경. (사진=MS투데이 DB)
    강원대 병원(사진 왼쪽), 한림대 병원 전경. (사진=MS투데이 DB)

    ▶수술 미루고 간호사가 의사 업무 떠맡아

    현재 강원대 병원은 고질적인 의료 인력부족 상황에 더해져 전공의의 집단 사직 여파로 사실상 마비 상태다. 익명을 요청한 강원대병원 간호사 A씨는 “40~70% 정도 입원 환자를 덜 받고 수술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있다”고 했다. 강원대병원에 따르면 환자 동의서, 드레싱 등 기초적인 진단 등 의사가 하던 업무를 간호사가 처리하는 상황이다.

    치료를 미룰 수 없는 중증 만성 질환 환자들의 불안이 특히 크다. 수년째 심장 질환으로 강원대 병원에 다니는 우모(70)씨는 “의사가 바뀌고, 원래 심전도검사실에서 하던 검사를 진료실 옆에서 칸막이 치고 하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다”고 했다.

    25일 오전 기준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강원대 병원은 중증 응급질환인 심근경색, 뇌경색, 뇌출혈, 담낭질환, 복부 응급수술, 영유아 위장관 응급내시경, 응급 투석의 진료가 불가능하다. 일반 병상 가동률은 53.8%로 절반에 그쳤다. 한림대 병원도 일부 응급수술이 불가하고 일반 병상 가동률은 40.6%이다. A씨와 B씨는 ”이러다 큰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ypar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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