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영월에서 나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그것을 먹어도 마늘 냄새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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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늘. 영월에서 나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그것을 먹어도 마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도문대작] 25. 혼탁한 세속의 마음을 정화해주는 강원도 영월 마늘

    • 입력 2024.05.11 00:01
    • 수정 2024.05.16 13:32
    • 기자명 김풍기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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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풍기 강원대 교수
    김풍기 강원대 교수

    마늘은 우리에게 늘 단군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환인이 늘 삼위 태백을 내려 보다가 아들인 환웅에게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다고 여겨서(弘益人間)’ 천부인 세 개를 주어 태백산 신단수로 내려가게 하였다. 환웅은 3000명의 무리를 이끌고 이곳에 터를 잡으니 바로 신시(神市)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인간의 모든 일을 주관하면서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在世理化). 이때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고 싶어 환웅에게 기도한다. 그는 신령스러운 쑥(靈艾) 한 묶음과 마늘(蒜) 20줄기를 주면서, 이것을 먹으면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인간이 되리라고 했다. 호랑이는 동굴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뛰쳐나갔지만 곰은 백일을 견뎌서 결국 여자가 되었다. 웅녀(熊女)는 환웅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신화는 우리 민족에게 서사(敍事)의 영원한 고향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 역시 ‘고기(古記)’를 인용한 기록이니 단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마늘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고 있었다.

     

    우리 신화가 시작되는 시간 안에 마늘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마늘은 우리 문화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우리 신화가 시작되는 시간 안에 마늘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마늘은 우리 문화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동아시아 음식 문화에서 마늘은 너무 기본적인 식재료라서 누구나 한두 마디쯤은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신화가 시작되는 시간 안에 마늘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마늘은 우리 문화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인류사에서는 보편적인 식재료가 마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음식 문화뿐만 아니라 약용, 주술 등 넓은 범위에서 마늘은 중요한 소재다. 오죽하면 일해백리(一害百利)라고 부르겠는가. 강한 냄새가 사람들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으므로 해로운 점을 제외하면 백 가지 이익이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마늘의 사용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요즘도 마늘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정도로 마늘은 그 냄새 때문에 꺼려지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이런 탓에 예부터 동아시아에서는 청정한 수행을 하는 수행자들은 마늘을 먹지 않았다. 불교에서는 오신채(五辛菜)라고 해서 냄새가 많이 나는 자극적인 음식 다섯 가지를 금지하기도 했다. 부추, 파, 달래, 흥거를 비롯하여 마늘이 거기에 포함된다.

    조선의 유학자 중에서도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허균이 쓴 이흥효(李興孝, 1537~1593)의 묘갈명을 보면, 이흥효가 문정왕후의 기일에는 술과 마늘을 먹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서 서술하기도 하였다.

    널리 재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식재료로 취급되었던 탓인지 허균은 ‘도문대작’에 하나의 항목으로 설정하여 다음과 같이 썼다. “마늘. 영월에서 나는 것이 가장 훌륭하다. 그것을 먹어도 마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냄새에도 불구하고 마늘은 다양하게 조리되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냄새에도 불구하고 마늘은 다양하게 조리되었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요즘은 경상도 의성이나 창녕, 충청도 서산 등 마늘을 특산으로 하는 지역이 몇 군데 있지만, 허균 당시에는 아무래도 지금과 차이가 있다. 조선 전기만 해도 마늘이 농가에서 널리 재배되는 품목이었는데, ‘동국여지승람’에는 경상도 성주, 선산 지역과 황해도 연안과 배천 지역의 특산물로 기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기록은 아마 생산량을 고려해서 국가의 세금 부과와 연계시키려는 의도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허균의 기록은 맛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 하겠다. 강원도 영월에서 나는 마늘은 마늘 특유의 향이 없으므로 아주 좋다는 점이 기록의 핵심이다.

    도교에 관심이 많았던 허균이기 때문에 청정수행의 전제로 마늘을 피해야 한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편찬한 ‘한정록’만 하더라도 당나라 때 재상을 지냈던 배도(裴度)라든지 당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왕유(王維) 등이 마늘을 먹지 않는 청정한 생활을 했다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허균이 평가하는 마늘의 등급은 바로 특유의 냄새가 나느냐 나지 않느냐 하는 점에 있었다.

    냄새에도 불구하고 마늘은 다양하게 조리되었다. 마늘쫑은 장아찌를 만들거나 볶아서 먹기도 하고, 마늘은 구워 먹거나 장아찌로 만들기도 한다. 물론 생마늘을 그냥 먹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시 마늘은 다져서 양념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다. 식생활의 기본 재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마늘은 늘 시장에서 활발하게 매매되었다. 근대 이전부터 농가에서는 마늘을 재배해서 수익을 내곤 했다. 일반 농가뿐 아니라 사대부 집안에서도 가용(家用)에 보태기 위해 적으나마 마늘을 재배했다.

     

    마늘은 구워 먹거나 장아찌로 만들기도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마늘은 구워 먹거나 장아찌로 만들기도 한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마늘 농사를 지어서 가용에 보태 쓰라고 아들에게 강권하다시피 했던 정약용은 유배지에서도 늘 집안 걱정이었다. 살아가는 시대는 달랐지만,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던 허균은 그래도 집안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겠다. 다만 이런 처지에서 환로(宦路)에 환멸을 느낀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이 무렵 그의 사상적 흐름 속에는 도교적 경향이 완연하게 보인다. 어쩌면 마늘을 떠올리고 그것을 품평하면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최고로 꼽았다는 것은 무의식중에 그러한 생각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다. 사정이야 어떻든 그의 뇌리에 강원도 영월에서 나오는 마늘은 힘들고 혼탁한 심정을 정화해주는 상상의 음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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