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삶

2022-05-25     시인

                  삶 

                                      최돈선

 

밖에는 비가 내리고 
나는 저 알 수 없는 문을 두드렸다.

꺼져가는 불빛도 안타까운 사랑도
홀로 버려둔 채
아아, 홀로 버려둔 채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밤새도록 뒤척이는
이 고단한 삶 때문에
내가 부르고 싶은 깜깜한 바다
누구도 찾을 이 없는
저 끝없는 밤바다에서
나는 어처구니없이
목 놓아 울었지만,
그러나 무엇인가 잊을 수는 없었다.

내 이 외로운 피의
처분 때문에

*최돈선 : 1969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칠년의 기다림과 일곱 날의 생’ ‘사람이 애인이다’ 외 다수. 현 춘천문화재단 이사장.

 

이영춘 시인

‘삶’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시다. 많은 성자와 선지자들은 ‘삶’에 대하여 말한다. “삶은 영혼을 비우는 일, 마음을 비우는 일”이라고. 바라문을 뛰쳐나온 붓다도 그 영혼을 비우기 위하여 일평생 수행의 길을 떠돌지 않았던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란 명제가 아닐까? 시는, 그리고 시인은 우리 영혼의 일부를 깨우치고 깨우쳐 보려고 몸부림치는 창조자들이다. 영혼의 일부는 칼릴 지브란의 말을 빌리면 “시는 영혼의 비밀”이라고 했다. 그 “영혼의 비밀을 언어로 누설하는 것이 시”라는 것이다. 그만큼 시는 우리 영혼 세계와 가깝다는 뜻이다. 사실 ‘삶’이란 무엇인지 모른 채 영원한 미지수 속에서 나는 오늘도 휘청휘청 걸어가고 있다.

이 시의 화자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나는 저 알 수 없는 문을 두드렸다”고 고백한다.  “알 수 없는 문”은 아마 ‘삶’이라는 명제의 ‘문’일 것이다.

그리고 “꺼져가는 불빛도 안타까운 사랑도/홀로 버려둔 채/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그렇다. 우리는 매일매일 “알 수 없는 문을 두드리”며 어딘가로 가고 있다. 그 어딘가는 어디일까? 라즈니쉬는 그의 저서 『삶이란 무엇인가』에서 “삶이란 결국 어떻게 사라지느냐, 어떻게 본래의 집으로 돌아가느냐를 깨닫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우리 세속인들에겐 영원한 미지수다. 이 미지수 속에는 “밤새도록 뒤척이는/고단한 삶”이 있다. 현실적, 현세적인 삶의 무게가 그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찾을 이 없는/저 끝없는 밤바다” 같은 길이다.

“목 놓아 울었지만/무엇인가 잊을 수는 없”는 것,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삶이다. 그것은 곧  “내(우리의) 이 외로운/피의 처분 때문”이다. 처분할 수 없는 외로운 피, 끓는 피⋯. 우리는 결국 이 윤활유 같은 피로 인하여 살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저마다 가슴속에 희망 같은 등불 하나씩 달고 ‘삶’이란 수레바퀴를 굴리듯이 오늘도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