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가을 이야기

2021-09-01     시인

               가을 이야기
 
                                   조 현 정

바가지 가득 콩을 씻다가
콩 한 알 굴러 떨어지니
그 한 알 주워 담으려다가
애꿎은 가엣 것들 건드려 열 알 떨어뜨렸다
한 마디 맞받아치다가 걷잡을 수 없는 싸움처럼.

네 말에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아도
내 말에 네가 얼마나 아픈지는 몰라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것들이 
서로 잘 났다고 사방팔방 뛰어 다녔다
 (중략) 
너를 위하여 
한 움큼 콩을 얻어 쌀을 안치는 일이
너를 위하여 사는 것보다 쉬운 일이건만
나는 자꾸 콩을 떨어뜨렸다

한 알 주우려다가가 열 알 떨어뜨리고
열 알 주우려다가 스무 알 떨어뜨리는 
초가을 저녁,

*조현정:2019년『발견』등단. *시집 「별다방미쓰리」외.*강원민예총문학분과회장역임.

이영춘 시인

은빛 운무 속으로 가을이 빠르게 걸어들어 온다. 푸른 하늘이 뚝뚝 떨어지듯 풍성한 가을의 기도가 방언처럼 뚝뚝 듣(落)는다. 이 가을 어귀에서 자성을 통한 성찰의 시 한 편을 만난다.
 
이 시의 화자는 “바가지 가득 콩을 씻다가/콩 한 알 굴러떨어지니/그 한 알 주워 담으려다가/애꿎은 가엣 것을 건드려/열 알 떨어뜨렸다”라고 고백한다. “한 마디 맞받아치다가 걷잡을 수 없게 된 싸움처럼” 이란 수사(修辭)로 침묵 같은 여운이 그 의미를 강조한다. 이것은 화자의 그 어떤 가치 기준에 대하여 평정을 잃었다는 자의식의 암시다. 

그런데 이 시에서 시적 알레고리와 성찰의 자세는 다음 문장에서 절정을 이룬다. “네 말에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아도/내 말에 네가 얼마나 아픈지는 몰라”라고 진술한다. 그렇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중심적 사고로 이해하고 해석하여 수없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면서 인생이란 성(城)을 쌓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시인의 상처는 시의 완성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 시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너를 위하여/한 움큼 콩을 얻어 쌀을 안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너를 위하여 사는 것보다 쉬운 일이”라고 진술한다. 이렇게 화자는 누군가를 위하여 “콩을 얻어 쌀을 안치는 일”로 그 어떤 자아인식의 준거를 설정하지만, “한 알 주우려다가 열 알 떨어뜨리고/ 열 알 주우려다 스무 알 떨어뜨리는/초가을 저녁”이라고 비약시켜 마무리 짓는다. 시적 묘미다.

어느 새 9월이다. 며칠 후면 상현달이 중천에 떠서 만월을 향해 항해할 것이다. 우리도 그 만월을 향해 수많은 콩알을 떨어뜨리고 또 주우면서 성큼성큼 이 인생의 바다를 건너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