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동행

2020-08-19     칼럼니스트

        동행

                       

                            김영남


산길 가다 보면
혼자 건너지 못할 개울 만나고
둘 힘 합해야 기어오를 수 있는 바위 만나네
그런 길에는 
서로 아름다운 손을 남기면서 가야 하네
나는 그 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그 손 한 번 훌륭하게 남기지 못했네
산길 밝히는 도라지꽃 한 번 되지 못했네
남은 길에는 누구의 산새라도 되어주어야 하는 걸까?
먼 길 비 오고 안개 끼어
앞길 보이지 않네
길 가로막고 있는 저 바위도
젖은 몸 따뜻하게 갖다대니
비 그을 안식처가 되네
내일 평짓길을 가다가 다시
가파른 기슭을 만날지라도
이제 서로 그 절벽은 되지 마세

김영남:1997년<세계일보>신춘문예등단. 시집「정동진역」「가을파로호」외 다수.

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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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가 50여 일 넘게 지속되었다. 그냥 장마가 아닌 수많은 재해와 인명 피해를 낸 장마다. 하늘도 무심하신 듯 이토록 많은 피해를 내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신다. 오늘도 그 큰 눈망울을 굴리며 그윽이 우리를 내려다보고만 있다. 이렇게 큰 피해를 입힌 것도 몇 십 년만에 처음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어디 가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지금 이 시간에도 옆에서 늘 함께 “동행”하던 가족과 자식과 친지를 잃은 이들의 그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나 계신지? 그것도 알 수가 없다. 

 가족을 잃은 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처절하고 기가 막힌 일인지 알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웃으로서 이런 분들에게 ‘동행’해 드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도와 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 것 같다. 아니, 나만의 한계인가? 그 어떤 보상으로도 목숨을 되찾아 올 수 없는 한계이기 때문에 한탄만 할 뿐이다.

 위의 시 “동행”은 따뜻한 마음의 인간애를 그려낸 시다. 우리가 살면서 남에게 따뜻한 “그 손 한 번 훌륭하게” 잡아주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자성의 인간애다. 인생사 어려운 “산길 밝히는 도라지꽃 한 번 되지 못했음”을 스스로 아파한다. 따뜻한 감성이다. 그러나 “남은 길에는 누구의 산새라도 되어주어야 하는 걸까?” 화자(話者)는 자성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왜 일까? 마치 폭우로 인해 목숨을 잃고 떠난 분들의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로도 도움을 드릴 수 없는 것과도 같은 물음표다. “먼 길 비 오고 안개 끼어/앞이 보이지 않”는 그런 심상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다보면 아니 “산길 가다 보면/혼자 건너지 못할 개울 만나고/둘 힘 합해야 기어오를 수 있는 바위 만날” 때가 있다. “서로 아름다운 손을 남기면서 가야”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이 풍진 세상에서 남아 있는 가족에게, 이웃에게 그 어떤 위로의 말로도 도움이 안 되지만 함께 아파하는 마음으로나마 ‘동행’이 되어 드리고 싶은 이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