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택배

2020-07-21     칼럼니스트

         택배

                        이 채 민

-피아노는 기본이고
축구는 선택이지만
바둑은 무조건 시켜야 해요

로비에 맡겨진 택배를 찾아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여인들의 수다 속으로 귀가 묻힌다

-야구 코치랑 밥 먹는 건 얼마죠?
-방송 학원에 아나운서는 누가 나와요?

2201호, 3702호, 5603호 아이들의 날개죽지에 
쇠못처럼 단단한 엄마의 선택 택배가
유성처럼 흘러든다

-스케이트와 라틴어 학원은 연속 매진이라
 방학 때로 미뤘어요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흑백의 무지개가
여인들을 건너와 내 뼈마디에 착착 달라붙는다

지구촌 어디에도 없는 상품들이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완판이다

나는 오늘 특별한 택배의 
유일한 목격자

*이채민:2004년「미네르바」등단*시집<동백을 뒤적이다>외*현,「미네르바」주간

이영춘 시인

이 시인의 시집 『오답으로 출렁거리는 저 무성함』이다. 뼛속까지 혼탁한 세상이다. 근간 체육계에서 한 선수의 죽음으로 인해 ‘출렁거리는 오답’이 수면 위에서 비틀거린다. 난제가 아니라, 난세다. 감독인지 코치인지 팀닥터인지 군기 잡는다고 때리고 먹방계(먹-放界) 구경하듯 음식을 강제로 먹이고---, 인권찬탈이다. 또 높으신 감독님께서는 출전할 때마다 항공료, 현지 체류 훈련비까지 요구했단다. 우리 부모들은 자식 일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갖다 바쳐야 했을 것이다. 엎친 데 겹친 격이라고 요즘 모 체육대학까지 선, 후배 사이에 전통인지 질서인지 군기 잡는다고 인간 학대에 가까운 체벌이 만연해 있다는 보도가 있다. 구태에 젖은 난세다.
 
 이 시의 화자는 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렇게 벌어지고 있는 세상 소문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귓속에까지 배달받은 것이다. 참 무섭고 무거운 택배다. “야구 코치랑 밥 먹는 건 얼마죠?” 소문으로만 듣던 말들을 직접, 그 좁은 공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듣게 된 것이다.

“밥 먹는 건 얼마죠?”란 말 속에는 밥만 먹는 게 아닐 것이다. 밥에 딸린 부수적인 것, 밥보다 더 큰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은 뉴앙스다. 근래에 폭발적 인기리에 끝났던 ‘SKY캐슬’의  한 장면처럼 ”지구촌 어디에도 없는 상품들이/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완판이다“ 우리나라에서만 팔리고 있는 상품일까? 화자(話者)의 예리한 풍자(satire)도 완판이다.

요즘 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의 자녀 해외유학 택배 전달금은 또 얼마나 될까? 말하지 못하고 쉬쉬 하는 그들의 배경이 궁금하다.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흑백의 무지개가“ 오늘 이 시간에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카페에서, 모처에서 수군수군 흘러가고 있겠지? 우리의 귀에까지 전달되지 못하는 택배가 수없이 은밀하게 전달되지는 않는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