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한여름 밤의 꿈

2020-07-14     칼럼니스트

    한여름 밤의 꿈

                           전기철
 
 
세상은 마법에 걸렸어요.
이스라엘 사람 유리 겔라가
숟가락을 구부리는 밤
모두들 티브이 앞에서
알라딘의 요술 램프를 쓰다듬듯이
숟가락을
밥 먹는 숟가락의 고개를
부러뜨리는 밤
그 한여름 밤에
나는 알바에서 잘려 행복에 시달리며
동물원으로 표범을 보러 갔어요.
그 한여름 밤에
모두들 숟가락을 부러뜨리는 밤에
동물원의 담을 넘었어요.
먼 아프리카의 꿈을 만나러
한여름 밤에
숟가락을 구부리는
그 한여름 밤에
세상의 담을 넘었어요.
유리 겔라가 숟가락을 부러뜨리는 밤에
아프리카의 밤을 만나러 갔어요.
숟가락들이 부러지는 밤에
세상의 담을 넘었어요.
어머니는 아직도 배추를 다 팔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그 밤에

*전기철:1988년 「심상」 등단. 1992년 「서울신문신춘문예 평론」 당선.  *숭의여대문창과명예교수
 

이영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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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참으로 낭만적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세익스피어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펼치는 ‘한여름 밤의 꿈’이 연상된다. 젊은이들의 엇갈린 사랑을 요정의 왕 오베론과 마법사 퍼크가 서로 엇갈렸던 사랑의 짝을 마법으로 다시 만나게 해 준다. 코믹하면서도 환상적인 이 작품은 한여름 밤에 즐길 수 있는 뮤지컬로 시원한 여름밤을 선사한다.
 
그러나 여기 이 시는 1984년 우리나라에 초청되었던 이스라엘 출신 마술사 유리겔라의 ‘숟가락 구부리는 마법’이 모티브가 되어 있다. 그 모티브 속에는 다양한 우리들 삶의 모습들이 희(喜)와 비(悲)로 엇갈린다. 한 쪽에서는 세익스피어의 작품 속 발랄한 주인공들처럼 ‘구부러지는 숟가락 마술’을 보며 웃고 즐긴다. 또 한 쪽에서는 “알바에서 잘려 행복에 시달리며/동물원으로 표범을 보러”간다. 알바에서 잘렸는데 행복에 시달리다니? 시련과 아픔의 역설paradox적 심상이다.

“모두들 숟가락을 부러뜨리는 밤/ 먼 아프리카 꿈을 만나러” “동물원의 담을 넘어야” 하는, “세상의 담을 넘어야” 하는 얼굴들, 그 얼굴들은 곧 우리들의 형상이다.
그 형상 중에는 아직도 세상 한가운데에서 등짐을 지고 있는 또 다른 형상이 있다. “아직도 배추를 다 팔지 못해/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다. 
모두들 티브이 앞에서 숟가락을 부러뜨리며 웃고 즐기는 이 밤에, 밥 먹는 숟가락의 고개를 부러뜨리는 이 밤에-, 참 애련하다. 그 어머니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어스름 저녁, 이 시간에도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어느 공사장에서높은 사다리를 오르내리는 가장은 없는지? 시장 골목 어귀에서 미처 다 팔지 못한 푸성귀 몇 다발에 동동 마음을 구르고 있는 어머니는 없는지?  아득하다. 한여름 밤의 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