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쉼터] 역사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의 효용가치 

2020-04-20     칼럼니스트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TV를 통해 부모와 자녀가 소통할만한 프로그램을 꼽아보라면 나는 단연코 MBC ‘선을 넘는 녀석들’을 추천한다.

예능 프로그램임에도 부모와 자녀가 대화할만한 좋은 소재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뿐만 아니라 흥미 요소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초기에는 역사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배움 여행으로, 시간뿐만 아니라 국경의 선을 넘어 우리가 몰랐던 숨겨진 역사를 발로 걸어보는 탐사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특정 역사를 중심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한국사만 공부하면 우리밖에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는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진행돼왔다. 특히 고려와 조선의 결정적인 역사적 상황은 중국 왕조 교체와 일본의 역학과도 큰 관련을 맺고 있다.

하지만 국사 위주로 배운 우리는 중국 역사뿐 아니라 일본 역사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고인이 된 역사학자 남경태는 “조선 시대 진경산수화와 판소리 등 민족문화가 왜 나오는지는 중국 역사와 연관돼 있다. 명ㆍ청 교체기인 17세기 중국이 오랑캐 국가가 되자 우리의 것을 배우자는 것이었다. 소현 세자도 그런 선각자 중 한 사람이다. 서인과 남인이 상복을 몇 년 입자고 서로 싸운 것도 중국이 개입돼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국경)선을 넘는 녀석들’에는 그런 지역사를 통해 양국 간 관계를 알게 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통해 한국사를 비교, 접목해 우리를 좀 더 객관적이고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발상을 전환하게 하기도 하는 등의 탐구 정신을 유도하기도 한다. ‘선을 넘는 녀석들’이 이런 식으로 점점 더 확장돼 간다면 가능성과 의미를 더욱 기대해볼 수 있는 예능이다. 

초기에는 ‘적국의 눈에도 너무 아름다워 차마 없앨 수 없었던 도시’ 파리 투어와 프랑스-독일 국경을 넘기 전 동화 같은 프랑스 국경도시 ‘스트라스부르’에서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설민석은 “베토벤은 독일인이지만 나폴레옹을 좋아했고, 프랑스대혁명을 동경했다. 혁명사상을 축하하고 싶다며 교향곡 ‘보나파르트’를 작곡했지만 향후 나폴레옹이 ‘사심’을 품고 황제에 등극했다는 소식에 악보를 찢고 제목을 바꾼 곡이 ‘영웅 교향곡’이다”고 설명했다. 

 

‘스트라스부르’는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된 곳이다. 아기자기한 풍경 사이로 고풍스러운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시가지가 그대로 보존돼 있어,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매혹적인 도시다. 
 
이곳에 있는 고딕 양식의 대성당을 두고 설민석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구분하는 것은 창문의 크기다. 로네네스크는 벽의 힘이 약해 창을 크게 낼 수 없지만, 고딕에 오면 창문이 훨씬 커진다”고 설명했다.
 
요즘은 ‘선을 넘는 녀석들’이 국내를 중심으로 역사적 현장을 찾아 나서고 있다. 제목도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로 바뀌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태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가며 설민석 팀들이 조용히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찾아 나서고 있다.

 

지난 16일 방송된 숙종편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숙종은 사극의 단골 등장인물이다. ‘장희빈’ ‘동이’ ‘장옥정, 사랑에 살다’ ’대박’ ‘해치’ 등에 숙종이 나왔는데, 주로 ‘사랑꾼’으로 그려졌다. 숙종과 세 여인, 인현왕후, 장희빈, 숙빈 최씨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뤄 조선판 ‘부부의 세계’ 또는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이라 할만하다.

장옥정은 정비와 계비 등 조선시대 궁중 여인 중 유일하게 정사에 외모가 기록돼 있다. 정사중의 정사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숙종실록)에 장옥정은 아름답다고 돼 있으니, 왕을 중심으로 한 여인의 미모와 암투를 드라마로 풀어내기에 좋다. 중국에서도 청나라 옹정제는 치적을 알려주는 콘텐츠보다는 ‘옹정황제의 여인들’ 같은 치정 사극이 훨씬 더 잘 팔린다.

하지만 ‘선을 넘는 녀석들’은 지난 12일 방송에서 설민석이 숙종을 여인뿐만 아니라 붕당과 관련해 좀 더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숙종 때는 조선을 통틀어 당파 간 정쟁이 가장 심했다. 붕당정치가 절정에 달한 시대다. 숙종 때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하지만 숙종은 그 어떤 왕보다도 왕권을 강화시켰다. 그러니까 사랑도 많이 하고 일도 많이 했다. 이 둘은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게 아니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선녀들’의 설민석은 숙종이 강행했던 서인과 남인의 환국에 따라 좌우된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냈다. 장희빈의 세자 출산, 인현왕후의 폐위, 궁에 컴백한 인현왕후, 사약 받는 장희빈의 몰락을 설명했다. 사랑꾼으로서 숙종의 면모가 왕권 강화의 도구로 전락한 듯하지만, 붕당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좀 더 간략하게 말하면, 숙종이 서인 세력을 눌러야 할 때는 장옥정을 총애하고, 남인 세력을 눌러야 할 때에는 인현왕후와 멜로를 전개해나갔다.
 
숙종은 배짱이 두둑하고 성미가 불같은 사람이다. 정통성에서 꿀리는 게 없어서인지, 14살에 즉위했음에도 수렴청정 없이 친정을 했다. 그는 경신, 기사, 갑술 등 세 번의 환국(換局, 정국전환)을 통해 붕당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며 왕권을 강화해나갔다. 장희빈의 아들인 윤의 원자 확정을 반대하던 송시열에게는 사약을 내려, 비대해진 서인 세력을 축출시키는 기사환국(1689년)을 강행했다.

그때 송시열의 나이는 무려 82세, 숙종 자신보다 54세나 많았다. 사약을 내리지 않아도 머잖아 자연사할 나이다. 선조 재임 시절 태어난 송시열은 이조판서와 좌의정 등을 역임하고, 조선시대를 통틀어 정약용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중국에서 공자 맹자 순자 ‘급’(級)에만 붙인다는 ‘자’(子)가 조선학자로는 유일하게 붙어 ‘송자’(宋子)로 불리는 대유학자다.
 

게다가 송시열이 효종의 봉림대군 시절 스승이기도 한 점을 감안하면 숙종의 배짱도 알만하다. 송시열은 숙종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인 효종과 현종때 일어난 2차례 예송논쟁의 역할만 봐도 왕에게는 극도로 부담스러운 존재임을 알 수 있다. 먼 제주로 유배를 갔던 송시열은 한양으로 올라오다 정읍에서 사약을 받고 죽는다.
 
숙종은 왕권 강화라는 기반 위에서 다양한 치적을 쌓을 수 있었다. 45년의 치세동안 탕평책 시행을 비롯, 북한산성, 남한산성과 강화도 돈대를 건설하고 5군영을 완성해 국방력을 강화했다. 광해군 때에 실시한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100년 만에 완성해 민생 경제를 살렸다. 고양이 ‘금손이’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정사를 볼 정도로 애묘가이며 오골계, 검은 콩, 흑염소 등 ‘블랙푸드’를 즐긴 건강전도사이기도 했다. 사극에서의 ‘사랑꾼’ 숙종은 알고 보면 ‘정치력의 대가’이자 ‘업적 부자’였다. 또한 ‘선을 넘는 녀석들’은 물리적 선을 넘는데 그치지 않고 의미를 확장하는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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