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유랑

2020-02-12     칼럼니스트

                                  유랑

                                                                                  박성우 

 

 

백일도 안 된 어린 것을 밥알처럼 떼어 처가로 보냈다.

 

아내는 서울 금천구 은행나무골목에서 밥벌이를 한다

 

가장인 나는 전라도 전주 경기전 뒷길에서 밥벌이를 한다

 

한 주일 두 주일 만에 만나 뜨겁고 진 밥알처럼 엉겨 붙어 잔다

 

*박성우: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영춘 시인

노동의 유랑! 우리 인생은 모두 유랑민이 아닐까? 생명의 젖줄인 밥을 위하여, 밥줄을 위하여, 어제는 오늘을 위한 유랑이고 오늘은 내일을 위한 유랑이다. 밥벌이는 곧 가족을 위하고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정신적 노동자인 화이트칼라는 종이 한 장 받아 들고 유랑을 떠나야 한다. 블루칼라는 육체적 노동을 위하여 이른 새벽부터 푸른 인력시장을 유랑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이 시는 짧으면서도 아내와 남편이 밥벌이를 하기 위한 노동의 ‘유랑’이 잘 그려져 있다. 백일도 안 된 어린 아기를 처가에 맡겨 놓고 가장은 전라도 전주 경기장 뒷길에서 밥벌이를 하고, 아내는 서울 금천구 은행나무 뒷골목에서 밥벌이를 한다. 그리고는 한 주일 혹은 두 주일에 한 번씩 만나 뜨겁고 진 밥알처럼 엉겨 붙어 잔단다.

시적 묘사의 극치를 이뤄내고 있다. ‘유랑’을 통하여 한 가정과 가족애의 애틋하면서도 따뜻한 사랑이 꽃송이처럼 피어오름에 전율한다.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