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간 일하고 손에 쥔 ‘1만원’⋯폐지 노인의 보릿고개
  • 스크롤 이동 상태바

    11시간 일하고 손에 쥔 ‘1만원’⋯폐지 노인의 보릿고개

    [반토막 폐짓값] 上. 폐짓값 폭락에⋯시급 948원
    폐지 줍는 노인 전국 1만5000명, 강원은 456명
    1년새 골판지값 1 ㎏당 148원→ 71원 '급락'

    • 입력 2023.03.09 00:01
    • 수정 2023.03.13 16:21
    • 기자명 이현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적으로 폐지줍는 노인들의 수는 약 1만5000명. 강원도에도 456명의 폐지줍는 노인이 있다. 하지만 이번 겨울은 이들에게 유난히 혹독하다. 1년 사이 폐지가격이 폭락해 하루 꼬박 일해도 1만원 벌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폐지를 주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들을 위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지 짚어봤다. <편집자 주>

     

     

    지난해부터 이어진 경기 침체 여파로 재활용 종이 수요가 줄어들면서 폐지가격이 1년 전과 비교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해 폐지를 수집해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들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선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노인인력개발원으로부터 제출받은 ‘폐지수집 노인 현황과 실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폐지를 수집하는 전국 노인은 1만4800~1만5181명이며, 이 가운데 강원은 456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노인 수로, 부업으로 하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폐지줍는 노인들의 이동거리와 시급. (그래픽=박지영 기자)
    폐지줍는 노인들의 이동거리와 시급. (그래픽=박지영 기자)

    지난해 2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10명을 대상으로 목걸이형 GPS 추적 장치를 지급한 후 6일간의 활동 실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12.3㎞, 노동시간은 11시간 20분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의 근로 대가는 밑바닥 수준이다. 반나절을 일해 받은 일당은 1만428원. 시급으로 환산하면 948원에 불과하다. 올해 최저시급인 9620원과 비교하면 10%도 채 안 된다.

     

    노순덕(83) 할머니는 반나절 동안 고물을 주워 5000원 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쥐었다. (사진=이현지 기자)
    노순덕(83) 할머니는 반나절 동안 고물을 주워 5000원 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쥐었다. (사진=이현지 기자)

    지난 1일 본지가 춘천의 한 고물상 앞에서 만난 노순덕(83)씨는 캔과 옷가지들을 손수레에 잔뜩 실어 고물상을 찾았다. 노씨가 이날 6시간 동안 부지런히 주워 판 고물값은 4950원. 고물상 주인이 50원을 더 얹어줘 5000원짜리 지폐 1장을 손에 쥐었다.

    노씨는 지난해까지 고물 중에서 그나마 수집이 쉬운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았다. 하지만 폐지가격이 급락하자 이를 포기하고 고철을 줍기 시작했다. 그는 “폐지를 줍는 다른 할머니들을 보면 많아야 3000원 번다”며 “나는 그나마 몸이 성하니 차라리 고철을 줍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말했다.

    고물상에서도 폐지를 줍는 노인이 줄어든 것을 실감하고 있다. 신동근(55)·유종숙(61)씨 부부가 10년째 운영하는 후평동 고물상에는 지난해 16명의 노인이 고정적으로 폐지를 팔러 왔다. 하지만 올해는 10명으로 그 수가 크게 줄었다. 신씨는 “폐지 줍는 일은 예전에도 노동에 비해 수입이 적은 편이었는데 가격이 떨어진 지금은 노인들이 한 달 꼬박 일해야 연탄값 정도 번다”며 “장마와 더위로 일하기 힘든 여름이 되면 폐지 줍는 노인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후평동의 한 고물상 모습. (사진=이현지 기자)
    후평동의 한 고물상 모습. (사진=이현지 기자)

    특히 2021년부터 폐지가격이 폭락하면서 고물상들이 폐지를 사들이는 것조차도 꺼리는 상황이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강원지역 골판지 가격은 2021년 12월 1kg당 148원에서 2022년 12월 71원으로 50% 이상 급락했다. 같은 기간 신문지 가격도 kg당 137원에서 112원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기준 강원지역 골판지와 신문지 모두 전국 평균 가격(84원·126원)보다 낮았다. 모든 산업에서 종이 사용량이 줄자 폐지 재고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씨는 “고물상에서도 폐지를 받아다 팔아 봤자 1kg당 마진이 10~20원 정도라 취급을 안 하는 게 낫다”며 “고물상에도 재고가 계속 쌓여가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노인들을 돌려보낼 수도 없어 우리도 난감하다”고 이야기했다.

    2021년만 해도 종이 수요가 많아 폐지가격이 200원대 가까이 올랐고 ‘금(金)판지’라 불렸다. 재고가 없어 제지 공장이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기준 폐지 재고는 15만t으로, 7만~8만t가량이던 평소 재고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이에 정부는 제지 업체에 보관료와 운임비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단기처방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수도권 한 제지 업체 관계자는 “폐지가격이 급락한 지난해 중순을 기점으로 정부가 올해 6월까지 넘쳐나는 폐지 재고를 공공창고에 옮기겠다는데 이는 순간의 위기만 넘기겠다는데 불과하다”며 “정부가 폐지를 매입해 수요 증가 시 비축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지 기자 hy0907_@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9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