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짓값이 문제 아니야⋯폐지 수집 밖에 할일 없는 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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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짓값이 문제 아니야⋯폐지 수집 밖에 할일 없는 게 문제"

    [반토막 폐짓값] 下. “사회적 일자리 부족이 문제“
    강원대 일대서 폐지 주워 5000원 버는 김씨 할아버지
    “폐지 줍는 노인 위한 사회적 일자리 확충 필요"

    • 입력 2023.03.09 00:01
    • 수정 2023.03.13 16:22
    • 기자명 이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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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씨는 두 아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기 싫어 고물 줍는 일을 시작했다. (사진=이현지 기자)
    노씨는 두 아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기 싫어 고물 줍는 일을 시작했다. (사진=이현지 기자)

    “부모가 돼서 자식들한테 부담 주기 싫어. 그래서 줍는 거야!”

    노씨 할머니는 두 아들이 주는 생활비 40만원, 기초연금 15만원, 고물 판 돈 10만원으로 한 달을 생활하고 있다. 운이 좋을 때는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 월 27만원을 추가로 번다. 할머니가 버는 돈은 최대 92만원. 하지만 노인일자리사업이 항상 있지 않기에 평소 65만원으로 생활한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남편 때문에 그마저도 병원비로 상당 부분 빠져나간다. 이 때문에 할머니의 생활은 언제나 빠듯하다.

    “아픈 영감한테 일 시킬 순 없잖아. 내가 더 돌아다니면서 벌어야지.” 할머니는 5년 전 인공관절 수술을 해 먼 거리를 다니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인심 좋은 동네 사람들이 고물을 챙겨줘 일하기 한결 수월하다고 말한다. 지금 할머니의 바람은 오직 하나다. 자식들한테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민폐는 되지 말자는 것. 그래서 오늘도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고물을 주우러 다닌다.

    같은 날 만난 김성배(82)씨.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폐지를 주워 파는 것이다. 이날 김씨는 강원대 앞에서 주운 폐지를 손수레에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었다. 이만큼이면 얼마를 받을 수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이거 다해봐야 5000원”이라고 되뇌었다.

     

    김씨가 끌고 다니는 손수레. 폐지를 가득 채우면 150㎏지만 손수게 무게를 제외하면 100㎏로 줄어든다. (사진=이현지 기자)
    김씨가 끌고 다니는 손수레. 폐지를 가득 채우면 150㎏지만 손수게 무게를 제외하면 100㎏로 줄어든다. (사진=이현지 기자)

    김씨의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채우면 그 무게가 150㎏에 달한다. 무거운 쇠로 만들어진 손수레 무게 50㎏를 제외하면 폐지의 무게는 100㎏에 불과하다. 1㎏에 50원인 폐지가격을 고려하면 손수레 한가득 실어야 5000원을 벌 수 있다. 노인일자리사업 등을 통해 돈을 버는 것도 고민해봤지만 청각 문제로 인해 포기했다. 그는 “기술도 없고 몸도 건강하지 않은 내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폐지 줍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1년간 강원지역 폐지가격 변화. (그래픽=박지영 기자)
    1년간 강원지역 폐지가격 변화. (그래픽=박지영 기자)

    고물상의 상황도 폐지 줍는 노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후평동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신씨는 “우리가 1㎏당 50원에 사서 70원에 업체에 다시 판매하는데 세금을 비롯해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며 “요즘은 인터넷에 고물값이 다 나와 있어 고물상에서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폐지를 받는 건 노인들이 폐지를 줍다 간혹 고철 같은 물건도 가져오기 때문이다”며 “이러다간 폐지만 들고 왔을 때 못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후평동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신동근(55)씨는 폐지가 이윤이 별로 남지 않아 고물상에서 취급을 꺼린다고 했다. (사진=이현지 기자)
    후평동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신동근(55)씨는 폐지가 이윤이 별로 남지 않아 고물상에서 취급을 꺼린다고 했다. (사진=이현지 기자)

    노인들은 한정적인 노인일자리 사업과 부족한 기초연금으로 인해 폐지줍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춘천시는 폐지줍는 저소득층 노인들에 대한 추가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 경로복지과 관계자는 “저소득층 1인 노인가구의 경우 최소 3만2000~32만원, 2인 가구는 6만4000~51만원까지 기초연금이 지원된다”며 “당분간 현금성 지원을 늘릴 계획은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을 위한 현금성 지원이나 단가 인상 등의 효과가 일시적이라고 지적한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폐지단가를 더 쳐주는 방식으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그 효과가 한정적이고 시장질서에 혼란을 줄 수 있어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필요한 건 폐지 줍는 어르신들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 확충”이라며 “노인이라고 무작정 쉬운 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일자리의 취지에 맞게 이들이 할 수 있는 적절한 강도의 일자리를 발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강선우 의원은 “저소득층 노인들이 폐지를 줍지 않고도 당장의 생계유지에 지장 없도록 국가 지원이 시급하다”며 “단기적으로는 사회적 기업 연계, 국비·지방비 직접 지원을 통해 수입을 보전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공공형 일자리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현지 기자 hy0907_@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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