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디움 된 느랏재] 상. 춘천 감정리 주민은 주말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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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디움 된 느랏재] 상. 춘천 감정리 주민은 주말이 두렵다

    감정리와 상걸리 잇는 느랏재 고갯길
    오토바이 동호회에 라이딩 명소로 소문
    주말이면 굉음, 마을 주민들 고통 호소
    노인보호구역 지정됐지만⋯효과는 미미

    • 입력 2022.06.26 00:02
    • 수정 2022.06.28 06:38
    • 기자명 배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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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동면 감정리 주민들은 밤낮으로 울려대는 오토바이 굉음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감정리와 상걸리를 잇는 구불구불한 느랏재 고갯길(56번 국도)이 오토바이 동호인들 사이에서 스피드를 즐기는 라이딩 코스로 명성을 얻으면서부터다. 아이러니하게 '느랏재'는 '느릿느릿 넘어간다'는 뜻에서 유래됐다.

    ▶도로포장 후 라이딩 명소 입소문

    감정리 주민들은 느랏재 고갯길이 새롭게 포장된 지난 2018년 6월쯤부터 오토바이가 부쩍 늘었다고 말한다.

    이전까지는 도로 곳곳이 갈라져 있어 오토바이가 빠른 속도로 달리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오토바이 통행이 많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 지도를 이용해 느랏재 고갯길을 살펴봤더니, 2018년 6월 사진에서 도로를 포장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0년 7월 같은 장소를 촬영한 사진과 비교해보면, 도로포장 이후 노면 상태가 확연히 좋아진 모습이다. 

     

    도로 포장 전(2018년 6월·왼쪽)과 포장 후(2020년 7월)의 느랏개 고갯길 모습. 2018년 사진에 도로를 포장하고 있는 중장비가 보인다. (사진=다음 지도 로드뷰 갈무리)
    도로 포장 전(2018년 6월·왼쪽)과 포장 후(2020년 7월)의 느랏개 고갯길 모습. 2018년 사진에 도로를 포장하고 있는 중장비가 보인다. (사진=다음 지도 로드뷰 갈무리)

    느랏재 고갯길은 경사가 가파르고 도로가 구불구불한 데 노면 상태까지 좋아지면서, 금세 라이딩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명소로 입소문이 났다. 

    오토바이를 즐겨 탄다는 춘천시민 박모씨는 “사실 도로가 포장되기 이전부터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랏재는 이름난 곳이었다”며 “차량 통행이 잦지 않아 속도를 낼 수 있고, 곳곳에 휴식할 공간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토바이 동호회 회원들은 느랏재 고갯길을 자동차 경주장인 ‘인제 스피디움’에 빗대 ‘느랏 스피디움’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라이딩 인증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동호회 회원들이 모여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접속해보니 오토바이가 넘어질 듯 바닥으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운전자의 무릎이 땅에 닿아 불꽃을 일으키는 사진과 동영상, 오토바이 여러 대가 중앙선을 넘어 일렬로 달리고 있는 사진 등 위험한 장면이 연출된 모습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사진을 본 동호회 회원들은 댓글을 통해 찬사를 보내는 한편, 자신도 곧 느랏 스피디움을 찾아가겠다고 글을 남겼다.

    ▶주말마다 굉음, 참다못해 마을 떠나

    오토바이 동호회 회원들이 느랏재 고갯길에서 주말을 즐기는 사이 감정리 주민들은 주말을 잃어버렸다.

    이는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마을이 떠나가라 울리는 오토바이 굉음 때문이다. 마을 주민 A씨는 “평온해야 할 주말이 소음 때문에 지옥이 됐다”고 토로했다. 

     

    춘천 감정리 주민들이 주장하는 오토바이 소음 피해 구간.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 감정리 주민들이 주장하는 오토바이 소음 피해 구간. (그래픽=박지영 기자)

    문제가 심각해지자 마을 주민 일부는 민원을 제기했다.

    주민 B씨는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리고 “감정리를 통과하는 도로가 재포장된 후 개조한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이 무리를 지어 다니며 밤낮없이 굉음을 발생시키고 있다”며 “또 과속으로 인해 지역 주민은 사고라도 당할까 봐 항상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주민들을 실망하게 했다. 

    당시 춘천시 담당자는 “이륜차 운행소음은 불특정 다수의 행위로 특성상 규제와 단속이 어려운 실정이다. 구체적인 차량번호 등을 함께 신고하면 관련 기관과 함께 불법개조 행위를 근절하도록 조치하겠다”며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B씨는 “오토바이 번호를 확인해 신고한다고 해도 경찰이나 시청 공무원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토바이가 자리를 뜬 상황이 대부분”이라고 답답함을 전했다. 그러면서 “수년째 마을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는 만큼, 행정당국이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노인보호구역 설정, 기대만큼 효과 없어

    주민들의 지속적인 노력이 일부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춘천 감정리 마을 인근 도로는 노인보호구역이다. 인도 한편에 엔진회전수(RPM)를 낮춰달라는 내용의 팻말이 붙어있다. (사진=배상철 기자)
    춘천 감정리 마을 인근 도로는 노인보호구역이다. 인도 한편에 엔진회전수(RPM)를 낮춰달라는 내용의 팻말이 붙어있다. (사진=배상철 기자)

    지난 2020년 감정리 마을을 통과하는 도로가 노인보호구역으로 설정된 것이다.

    노인보호구역에서는 최고속도가 30㎞로 제한된다. 노인보호구역 지정으로 문제가 해결되나 싶었으나, 기대만큼 큰 효과는 없었다. 무엇보다 과속을 단속하는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지 않았고, 설령 있다고 해도 전면에 번호판이 없는 오토바이는 과속 카메라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는 오토바이 동호회 회원들은 여전히 속도를 내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오토바이 주정차 문제도 지적했다. 노인보호구역에는 차량이 주정차할 수 없는데, 단속 대상에 이륜차가 빠져있다는 것이다. 갓길에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어도 단속할 근거가 없는 셈이다.

     

    춘천 감정리 마을 도로에 설치된 과속방지턱 옆으로 차선규제봉이 세워져 있다. 오토바이가 과속방지턱 옆을 이용해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다. (사진=배상철 기자)
    춘천 감정리 마을 도로에 설치된 과속방지턱 옆으로 차선규제봉이 세워져 있다. 오토바이가 과속방지턱 옆을 이용해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상황을 막기 위한 조치다. (사진=배상철 기자)

    노인보호구역이 되면서 설치된 과속방지턱도 한동안 무용지물이었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과속방지턱이 미치지 않는 도로 가장자리를 이용해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그나마 이달 초 과속방지턱 옆으로 차선규제봉이 세워져 이를 막을 수 있게 됐다.

    마을 주민 C씨는 “느랏재 고갯길을 연속해서 달리기 위해 마을 도로에서 불법 유턴한 뒤 느랏재 고갯길로 올라가는 오토바이가 많다”며 “노인보호구역이 유명무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마을 인근 도로에서 잠시 속도를 줄인다고 해서 소음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며 “느랏재 고갯길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오토바이 굉음이 산을 타고 울려 마을까지 내려온다”고 대책을 요구했다.     

    [배상철 기자 bs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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