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이라는 터널 안에서] 6. 지역을 위한 ‘진짜’ 개발
  • 스크롤 이동 상태바

    [로컬이라는 터널 안에서] 6. 지역을 위한 ‘진짜’ 개발

    • 입력 2021.08.21 00:01
    • 수정 2021.08.23 14:18
    • 기자명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작가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작가

    영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온 지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20여 년을 한국에서 보냈지만, 20대의 5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곳을 향한 그리움이 때때로 덮쳐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국을 향한 그리움은 단연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먹던 음식들 등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포함하지만 가장 선연하게 다가오는 그리움은 그 일상을 함께 하던 풍경들에서 비롯된다.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지 않고도 쉽게 접근 가능했던 녹지 시설과 흔하게 마주칠 수 있었던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주택들이 존재하는 영국만이 가진 그 풍경은 그대로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되어 돌아온다.

    영국과 한국의 각기 다른 풍경은 자연 공간과 건축 스타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풍경은 각각의 공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경계들로 이루어져 있다. 공간은 저마다 서로를 구별 짓기 위해 경계를 만들고 로고나 간판 같은 이름표를 만드는데 영국과 한국은 이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혹자는 유럽과 비교해 큼직하고 눈에 띄는 한국의 간판들이 건축적으로 미학적이지 않아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며 간판 디자인의 개선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 켠에서는 그 산만한 디자인의 간판들이 바로 한국의 풍경을 떠오르게 하는 시각 문화적 요소라고 이야기한다.

    영국과 한국의 도시를 비교했을 때 개선이 필요한 지점은 사실 간판이나 미관상의 건축 디자인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 바로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다. 제각기 다른 공간의 경계들은 티도 안 날 만큼 낮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터무니없이 높다. 영국의 풍경을 떠올려 보면 대체로 보행자 위주의 도로 위 낮은 건물에 턱이 낮은 입구를 가진 상가들로 즐비했고 거리는 언제나 다양한 사용자를 위한 저상버스가 지역 주민들을 위한 발이 되어 주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의 저상버스 도입률을 보인다. 버스는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으로서 모든 이들에게 공평한 이동수단이 되어야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특정 계층이 접근가능하지 못한 것은 교통수단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대다수 상점과 건물은 입구에 턱이 있고 경사로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 휠체어 이용자나 유모차 사용자 및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겐 접근이 쉽지 않다. 반면 영국의 도시 속 건물들은 저마다 입구에 경사로를 설치해 다수를 위한 접근성을 높였다. 영국의 도시에선 저상버스는 물론 작은 레스토랑을 가도, 개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를 가도 경사로나 자동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현대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도시를 형성했기 때문이라 말하며, 도시가 가진 무기는 바로 그 다양성이라고 언급했다. 작금의 한국 내 도시들이 결여한 접근 다양성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선 유 교수가 말한 도시로서의 장점을 살린 지역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의 모든 부분이 자발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개방되기엔 무리가 따르고 지방의 경우엔 특히 그렇다. 지방 도시는 공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중앙 정부의 예산 할당이 필요하다. 도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의 사업장 같은 경우 개인적으로 경사로나 자동문을 설치하기엔 큰 비용 부담이 따른다. 사회의 전반적 공감 의식과 공적 예산 투여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접근성 제한에 대항해 싸워온 장애인의 이동권 투쟁의 역사가 자그마치 20년이라지만 우리의 도시들은 아직까지 제자리걸음만 할 뿐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을 맡고있는 변재원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두가 언젠간 장애인이 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결코 비약이나 과장이 아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의 단면이다. 이제는 모든 지역이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도시를 만드는 것, 지역을 위한 ‘진짜’ 개발을 할 때다. <끝>

    [김수윤 문화예술기획자·작가]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