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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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도시

    • 입력 2023.05.29 00:00
    • 수정 2023.05.30 06:09
    • 기자명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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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합계 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2022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8명이다. 새로 태어난 세대가 앞선 세대들보다 아이 낳기를 꺼리는 현상은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OECD 국가 평균이 1.6명인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그 어느 곳보다 심각하다.

    영국의 BBC는 한국이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다고 보도하면서 “출산 파업(baby-making strike)”이라는 자극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왜 한국 젊은 세대는 이 기괴한 파업에 나선 것일까? 출산율의 문제는 여러 가지 사회적 원인이 섞인 복합적 문제이기 때문에 명쾌한 분석이나 단일한 해법을 내기는 어렵다. 현상을 넘어서 기저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지금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비용으로 인식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에서 아이 1명을 낳아 대학을 졸업시킬 때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3억9870만원이다. 그동안의 물가상승을 감안할 때 현재는 5억원은 있어야 출산을 결심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의 합계 출산율이 이해된다. 아니 0.78명은 가혹한 비용 계산에 비해 높은 수치로 보이기도 한다. 5억원을 출산과 양육의 비용으로 감내할 수 있는 부모들이 그렇게나 많단 말인가? 정부가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80조원을 사용했지만, 출산율이 계속 떨어진 상황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출산의 대가를 지원금으로 지불하는 사회 정책은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따져봐도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계산하고 손익을 따질수록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들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한국과 같이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다양한 대안이나 선택을 주지 않으면 남들과 비교하기 편한 셈법으로, 효율화된 출산을 꾀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출산은 아주 비효율적이고 낭만적인 사건이다. 아주 우연적인 선택의 결과이며 앞날 감당해야 불확실한 손익을 따져보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앞선 세대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하는 것을 신이 주신 축복이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적 만남으로 말하는 것도 이런 인식의 반영이었다. 낭만적 사건으로서 출산은 계산으로 따질 수 없는 비효율성과 불확실성, 우연성을 인정하고 적응할 수 있다는 낙관을 갖는다.

    자연에 가까이 살던 인간은 예측 불가능하고 모호한 사건과 환경에 익숙했다. 숲속과 강가에서 벌어지는 변덕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며 저마다의 삶을 꾸려나갔고 내 아이도 그럴 수 있다고 낙관하며 출산을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자연을 떠나 도시에 사는 인간은 통제되고 예측되는 사건들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와 자동차를 안정된 삶이라고 외치며 불확실한 미래를 아이에게 줄 수 없다고 출산을 재앙이라며 거부한다.

    우리 도시가 불확실이 주는 비효율성과 모호함이 만드는 우연성을 받아들이면서 구성원 스스로 창조적으로 통합해 나가는 도시, 살면서 만나는 갖가지 시련과 도전에 순응하지 않고 해결책을 찾는 도시가 될 수는 없을까? 시스템이 우연성을 통제하는 큰 도시보다 공동체가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작은 도시가 춘천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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