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③“있는지도 몰랐어요”⋯춘천 ‘착한가격’이 실패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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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③“있는지도 몰랐어요”⋯춘천 ‘착한가격’이 실패한 이유

    업소도, 시민도 모르는 착한가격제도
    홍보 부족에 업소도 외면
    신규업소 모집, 4차례 추가에도 미달
    “공무원 역량 부족, 타 지자체 벤치마킹해야”

    • 입력 2023.05.25 00:03
    • 수정 2024.01.02 09:27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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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시 착한가격업소 제도가 이 지경까지 간 데는 관리 주체인 시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게 업소들의 평가다. 업주들은 유례없는 고물가에 코로나19까지 겪으면서도 가격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써왔지만, 시는 간판만 달아주곤 무관심이었다.

    사정이 이러니 업소들은 착한가격업소 인증을 자진 반납하거나, 지원금을 더 준다 해도 참여를 주저한다. 올해 2~5월 춘천시가 제도를 확대하기 위해 신규 모집을 4차례나 진했는데도 아직까지 목표 업소 46곳을 채우지 못했다. 신청한 업소가 심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실제로 참여하는 곳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죽림동의 한식당 주인은 “예전에 처음 지정되고 나서 4박 5일인가 교육도 다녀왔어요. 그랬는데 혜택도 하나 없고 보답도 없더라고요. 이런 걸 왜 계속해요. 요즘 물가도 비싼데 가격만 싸게 팔면 결국 손해만 보는 거죠. 지원금 더 준다고 해도 안 할래요”라고 말했다.

    한 고깃집 사장은 “싸게 팔아도 박리다매식으로 많이 팔면 괜찮죠. 요즘 돈쭐 낸다고 하잖아요. 선행하는 가게 같은 곳들. 착한가격업소도 이렇게 알려지도록 지원해 주면, 누군들 안 하고 싶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업소와 소비자들은 착한가격제도가 10년이 넘도록 자리 잡지 못한 주된 원인으로 ‘홍보 부족’을 꼽는다. 착한가격으로 소문이 나야 손님도 많이 오고, 가격을 낮추는 대신 판매량을 늘릴 수 있어서다. 착한가격이라는 제도의 취지도 여기서 출발했다.

    춘천의 한 분식집 사장은 “손님들이 착한가격업소라 해서, 가격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찾아오진 않아요. 우리가 가격을 낮춰서 노력하면 시에서는 홍보라도 잘해주든지, 아니면 지원품이라도 잘 챙겨줘야 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실제 춘천시의 홍보 활동은 제도를 알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홈페이지에 업소 정보와 가격 등을 정리해 엑셀 파일로 올리고, 신규로 모집할 때도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형식적인 업무 외에는 찾기 어렵다.

    본지가 이번에 신규 지정을 신청한 업소 30곳에 직접 확인해 봤더니 모집하는 사실을 알고 지원한 곳이 거의 없었다. 업소들 대부분 ‘손님들이 알려줘서’ 신청하고는 혜택조차 모르고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한 중식당은 사장은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손님이 추천해 줬고, 시청에서 오더니 착한가격업소가 된 거죠. 저희가 신청한 게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온의동의 수산물 식당도 “손님이 해주신 건데요. 혜택은 정확히 몰라요. 그냥 LED로 착한가격업소 간판 달아준다는 건 들었어요”, 소양로의 식당 역시 “손님이 해줬어요. 혜택은 저도 궁금해요”라며 오히려 취재진에게 묻기도 했다. 신규 지정업소 30곳 중 20곳에 가까운 업소가 제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시청 관계자는 “이번에 신규 모집이 끝나고 나면 착한가격업소 홍보 캠페인을 실시하려 한다. 또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로 지정된 착한가격업소의날에 공무원들이 점심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직접 뛰고, 버스에 광고까지⋯서귀포시, 홍보서포터즈 운영

    다른 지자체를 보면 춘천시가 얼마나 상반된 행정을 보이는지 확인된다. 부산 남구청은 담당 공무원이 착한가격업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선정하고, 마을버스에 모집 광고까지 부착한다. 여기에 각 업소별 사진과 메뉴 등의 정보를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해 홍보를 지원하고 있다. 남구는 인구 25만명으로 춘천과 비슷한 규모지만, 착한가격업소는 51곳에 달한다. 국비 지원으로 규모가 확대되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인구 18만의 서귀포시는 무려 67개소를 운영 중이다. 홈페이지는 착한가격업소 지도를 올려놓고 위치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업체별 이미지와 정보를 클릭하면 알림창(팝업)으로 뜨도록 게시해 접근성도 높다. 지난해부터는 시민 아이디어로 발탁된 ‘소상공인 홍보 청년 서포터즈’를 추진, 착한가격업소 맞춤형 콘텐츠를 제작해 홍보하고 있다.

     

    춘천시 홈페이지 내 착한가격업소 안내화면(위). 업소 목록을 엑셀파일을 따로 내려받아야 확인해야 할 정도로 허술하다. 반면, 제주 서귀포시 홈페이지는 지도에 업소를 표시하고, 클릭하면 업소 정보가 알림창으로 뜨도록 꾸몄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시 홈페이지 내 착한가격업소 안내화면(위). 업소 목록을 엑셀파일을 따로 내려받아야 확인해야 할 정도로 허술하다. 반면, 제주 서귀포시 홈페이지는 지도에 업소를 표시하고, 클릭하면 업소 정보가 알림창으로 뜨도록 꾸몄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제주 서귀포시 홈페이지 내 착한가격업소 안내화면 이용 모습 (이미지·GIF=이종혁 기자)
    제주 서귀포시 홈페이지 내 착한가격업소 안내화면 이용 모습 (이미지·GIF=이종혁 기자)

     

    청주시의 경우 이번에 국비 지원이 확대되면서 업소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사전 조사해 직접 지원한다. 이를 통해 벽걸이 에어컨, 업소용 냉장고, 커피머신, 미용전동의자 등을 착한가격업소에 제공했다. 또 충북도와 협의해 시내버스에 착한가격업소를 홍보하는 광고도 시작했다.

    박용재 청주시 지역경제팀 주무관은 “버스 광고를 비롯해 홈페이지에 게시도 하고, 뉴스를 통해서도 홍보를 많이 했다. 시청 전 부서 공무원들에게도 협조를 요청해 추천도 많이 들어오다 보니 목표했던 수보다 두 배 넘게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춘천시는 올해부터 시설환경개선금 200만원, 공공요금 50만원을 지원하는 등 기존에 쓰레기봉투만 지원하던 수준에서 규모를 배 이상 늘렸다. 지정업소를 기존 30여곳에서 70곳으로 확대하고, 예산도 지난해 3900만원에서 올해 2억1126만원(업소당 250만원)으로 늘려 잡았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제도가 마련되면, 활성화는 각 지자체의 노력이 절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책상 앞에 앉아 업소가 신청하길 기다리기보단 적극적으로 찾아가 발굴하고 지역의 맛집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한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가격이 저렴한 업소를 직접 발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잘 모르는 업소는 오히려 홍보를 해주겠다고 허락을 얻거나 명단에 올리고, 소비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좋은 제도가 잘 실행이 안된다는 건 공무원의 역량 문제가 가장 크다. 실행만 잘되면 굉장히 좋은 사업이다. 사업이 하루 이틀하고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사업 실행이 잘 안되고 있다면 잘 되고 있는 지자체 행정을 벤치마킹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

    [김성권·이종혁 기자 ks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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