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③ 심평원, 5년간 산재 인정 1건⋯ "산재 은폐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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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③ 심평원, 5년간 산재 인정 1건⋯ "산재 은폐 의혹"

    업무 과중 호소⋯사망 직원 유서에 '업무 스트레스'
    지난해 사망사고 관련 '징계성 인사' 글도 확산
    직원 정신건강 악화에도 산재 신청 및 인정 단 1건
    강은미 “산재 은폐 소지”

    • 입력 2023.03.30 00:02
    • 수정 2023.04.02 00:10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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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본사 사옥으로 직원들이 출입하고 있다. (사진=이정욱 기자)
    21일 강원도 원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본사 사옥으로 직원들이 출입하고 있다. (사진=이정욱 기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직원들의 업무 과중과 이로인한 정신질환 증가에 대해서는 기관 내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1일 MS투데이 취재진이 만난 강원 원주시 주민들은 유리로 뒤덮인 심평원 건물에 하루가 멀다하고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고 증언했다. 심평원 사옥 인근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은 "밤이고 새벽이고 만날 불을 켜놓고 있다. 집과 마주보고 있는 유리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너무 환하기도 하고 공공기관이 전기세 낭비하는 것 아닌지 민원을 넣었더니 '실제 일하고 있었다더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다른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한 직장인은 "밤마다 불이 켜져있는 걸 빗대 '원주의 등대'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었다. 그런데 직원 분들이 안타까운 일을 겪었다는 걸 들으니 웃지 못할 얘기인 것 같다"고 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숨진 직원 A씨는 업무 관련 스트레스 등을 호소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에는 관리직급 부장 B씨가 본원 건물 옥상에서 투신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B씨는 당시 우울증 등의 이유로 한 달간 병가를 내고 휴직 중이었다.

    김유경 노무사는 “(극단적 선택은) 보통은 본인이 거주하는 곳, 혹은 제3의 장소에서 일어난다. 사업장에 그랬다는 건 통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업무 관련성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도 이 직원의 사망을 두고 ‘징계성 인사발령’부터 ‘명예퇴직 반려’,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등 여러 추측성 글이 올라왔다. 블라인드는 회사 이메일 등과 같은 인증을 거쳐야 해 소속 직원만 글 작성이 가능하다.

    한 심평원 직원은 “징계성 발령이 맞다. 추진하던 시스템 성과로 전혀 관련 없는 부서로 발령났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말만 부서지 유리방 안에 덩그러니 책상과 의자만 있던 방이라고 한다. 그러니 자존감이 떨어지고 30년 동안 일했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실제 B씨는 숨지기 한 달여 전인 10월 31일 지속가능경영성과 추진단 경영관리반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또 다른 직원은 “평가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는 누가 지시했나, 실현 가능한 것이었나, 갑자기 좌천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명예퇴직 신청은 왜 안 받아 준건가”라며 그간의 과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또 “어떤 이유든 4년 연속 매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우가 있다는 건 이 조직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직원도 있었다.

    심평원 측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당시 한 언론보도를 통해 ‘개인적인 문제’라며 사적인 일로 간주했는데 여전히 직장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이호 심평원 홍보기획부장은 “경찰에서 사건 종결 처분을 했고, 이와 관련해 (회사에서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확인할 수도 없고, 그냥 (직원들의)의견이다. 저희는 아는 바가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사내 분위기는 수개월이 지난 지금도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가라앉은 분위기가 역력했다. 원주 심평원 본원 인근에서 취재진과 만난 직원들 대부분은 “말씀드리기가 그렇다”, “잘 모르겠다”며 사고와 관련한 언급에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무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렵게 입을 뗀 한 직원은 “같이 일하던 동료다보니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처지는 기분이다. 혼자 사는 젊은 직원도 많다보니 우울증을 겪는 경우도 많이 봤고, 그때 사고 이후로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TSD)를 호소하는 직원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사망 10건에 산재처리 1건⋯강은미 의원 “산재 처리 기피 조사 필요”

    임직원들은 노조의 대응에도 불만을 내비쳤다. ‘조합원이 아니어서, 또는 유가족이 요청이 없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진상조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노조를 포함해 내부 직원들은 보복이 두려워 아무런 이야기나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 노조는 무용지물”이라는 비판 글을 익명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직원들의 정신건강 문제와 잇단 사망사고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단정적으로 업무 연관성이 없다고 회피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진상을 밝히고, 근무환경 개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상원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장은 “직장 내 사망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주변그룹은 정신적으로 취약해질 수 있다. 이해관계나 친밀도에 따라 취약 위험이 높게 나타나고,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입장에선 치부가 드러나면 일이 더 커지니 감추려고 한다. 하지만, 덮는다고 끝이 아니다. 회사는 왜 그런 선택에 이르게 됐는지 원인을 밝히고, 이를 통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보통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노조가 먼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공동으로 조사하는 게 정상인데 아무런 대응 없이 지나쳤다는 것 자체가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또 있다.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직원이 늘어나고, 유급 질병휴직자도 급증했으나 질병에 의한 산업재해는 사실상 신청조차 없었다. 근로복지공단 자료에 따르면, 심평원의 질병재해는 2019년 2건이 신청됐으나 모두 불승인됐고, 2020년 1건이 신청돼 승인됐다. 사망사건도 질병을 포함한 총 10건 가운데 산재신청은 1건만 신청, 승인됐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질병휴직자가 급속히 증가한 반면 산재 처리는 거의 되지 않았다는 점도 의구심이 든다. 심평원이 산재처리를 기피해 유급 질병휴직으로 처리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근로감독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된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따르면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 문제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 등에 특별감독을 실시할 수 있다. 본지가 고용부에 질의한 결과 심평원 사안은 근로감독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최충운 고용부 근로감독기획과 사무관은 “정신질환 진료를 받은 직원 수가 이 정도면 비정상적이다. 한 번 살펴볼만한 상황이다. 사망 사고의 경우 통상의 징계(인사발령)보다 매우 불합리하거나 부당한 징계로 인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면 노동관계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끝>

    [김성권·이종혁 기자 ks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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