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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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비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기자수첩] 서충식 사회팀 기자

    • 입력 2023.03.15 00:00
    • 수정 2023.03.16 08:19
    • 기자명 서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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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복음선교회로 알려진 JMS의 총재 정명석씨 등 사이비종교를 다룬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기독교복음선교회로 알려진 JMS의 총재 정명석씨 등 사이비종교를 다룬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여성신도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다녀온 정명석씨를 교주로 모시는 기독교복음선교회, 일명 ‘JMS’를 취재하면서 사이비종교가 생각보다 춘천 곳곳에 조용히 그리고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일반적으로 기성 교파와는 다른 교리로 신도를 가르치는 종교를 ‘이단’으로 부르는데, 여기서는 범죄와 연관돼 있거나 신도를 착취하는 등의 행태로 종교로 보기 어려운 조직을 사이비(似而非)종교라고 칭한다.

    “나는 그냥 평범한 교회인 줄 알았다니까. 어쩜 그렇게 티도 안 날까….” 춘천지역 JMS교회를 취재하면서 만난 사람이 처음으로 한 말이다. 그들은 찬송가로 추측되는 노래를 부르고, 겉보기에는 평범한 예배를 여는 등 눈에 튀는 일이 없다. 다소 폐쇄적이라는 것 말고는 일반적인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자는 지난달 말 다른 사이비종교도 접했다. 교회 자금 50억원 횡령으로 유죄를 받은 이만희씨가 총회장인 ‘신천지’다. 코로나19 방역 방해 혐의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퇴계동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만난 포교자들은 현수막을 내건 채 설문에 응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건넨 말이 “신천지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을 바꿔드리겠다”였다. 그들도 신천지가 대중에게 어떤 이미지인지 아는 듯했다.

    신천지는 국내에서 사이비종교 가운데 신도 규모로는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2020년 2월 발생한 대구 신천지발 코로나19 대규모 감염 사태로 그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이 스며들어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정부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공개한 신도 명단 속 춘천 신도는 2200여명이었다. 이들이 집회를 가졌던 문화센터, 복음방 등 부속시설은 14곳에 달했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변질된 교리를 가르친다는 이유로 기성 교파로부터 이단으로 분류된 기쁜소식강남교회의 목사 박옥수씨가 만든 단체 ‘IYF’가 도내 한 대학에서 교내 정식동아리로 등록돼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기독학생회 동아리 ‘IVF’와 혼동하도록 이름을 비슷하게 지었다는 풍문이다. 피해자들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영어 말하기대회, 해외 봉사활동 등을 주최하면서 평범한 대외활동 단체로 둔갑해 학생들을 끌어들여 본인들만의 교리를 강요한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 포진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이비종교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나왔지만, 지금까지 그렇다 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한 예로 1994년 종교문제연구가 A씨가 사이비종교 관계자에게 살해당하자 정부는 사이비종교 실태를 파악해 근절대책을 냈다. 하지만 법적으로 규제하는 내용은 없어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유는 거짓 교리로 신도를 현혹해 사회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하려면 우선 사이비종교가 가진 불법성을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단체가 범죄를 목적으로 설립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고, 교리의 허구성도 밝혀내야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거짓 교리로 신도들의 금전이나 성(性)을 착취한 사이비종교 관계자를 처벌할 때 종교와 교리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위법 행위에 초점을 두는 이유다.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는 대한민국은 사이비종교 규제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전무하다. 기성 교파들과 사이비종교 피해자들은 ‘종교실명제’ ‘사기포교 금지’ ‘피해보상법’ 등이 포함된 ‘유사종교 피해방지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요구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제19대, 제20대 대선 당시 후보자 대부분이 사이비종교 문제와 관련해 종교 자체와 위법 행위를 다른 사안으로 구분하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민의힘은 “행정부가 사이비 집단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워 유사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종교계와 초교파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반면 옆 나라 일본은 통일교에 의한 피해가 이어지자 지난해 12월 사이비종교 피해자 구제를 위한 법안이 통과됐다. 종교단체의 부당한 기부 권유가 발견되면 행정기관이 권고에 나설 수 있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이름을 공개한다. 또 반복적으로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100만엔(약 970만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이와 함께 부당한 권유로 기부한 금액을 돌려받을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법안 가결에 기여한 일본 한 의원은 “피해자 구제를 위한 한 페이지가 열렸을 뿐이다. 이 법안이 종착역이 될 수 없고, 계속 개정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종교라는 성역 뒤에 숨어 자행하는 사이비종교의 위법 행위를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사이비종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서충식 기자 seo90@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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