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익의 교육만평] 지역살리기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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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의 교육만평] 지역살리기 어떻게 할까

    • 입력 2023.03.07 00:00
    • 수정 2023.03.07 15:05
    • 기자명 책읽는춘천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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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 책읽는춘천 공동대표
    최광익 책읽는춘천 공동대표

    요즘 국내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우리나라도 큰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지도에는 작은 나라, 다녀보면 큰 나라’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 재미있는 것은 어디를 가든 사람들로부터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은 예전보다 못하며, 그래서 지역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인들은 지역 살리기 사업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다양한 정책을 시행한다.

    어떻게 지역을 살릴 수 있을까. 지난번 지방선거를 통해 나타난 정치인들의 공약은 더 많은 정부 예산 확보, 대기업 지역 유치, 토목건설사업 활성화를 통한 세수 증대, 자연환경 및 지역축제를 통한 관광객 유치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들의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정부 예산확보는 제한된 예산 범위 안에서 한 지역이 더 확보하면 다른 지역의 예산이 그만큼 감소하는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한 지자체 힘겨루기가 지역 간 상생발전에 도움이 될 리 없다. 대기업 유치는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두기 때문에 부지, 인재, 교통, 주택, 협업체제 등과 같은 인프라가 우호적이지 않다면 절대 이전하지 않는다. 가끔 대기업을 유치했다는 대대적인 언론홍보를 보게 되는데, 실상은 기업의 자회사나 하청기업에 불과할 뿐이다. 본사와 급여체계가 다르고 지역 외부에서 부품을 가져와 일부 공정만 담당하는 공장 유치가 과연 지역에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파트의 난개발과 무분별한 지역축제의 폐해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지역 살리기와 관련해서 브라질 쿠리치바시의 도시침술 사례는 참고가 될 만하다. 도시침술은 침술이 몸에 최소한 자극을 주어 건강을 회복하듯이, 도시에도 최소한의 개입으로 활성화하자는 아이디어다. 침은 오래 놓거나 이곳 저곳 연습 삼아 찔러서는 안되듯이, 도시침술의 생명은 신속과 정확에 있다. 단기간 소규모 형태로 버려진 공간의 창의적 재활용, 음악이나 조명 등을 활용한 풍경 연출, 시민들의 친절한 말과 자부심 넘치는 태도 변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작은 실천 등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지역재생의 밑바탕이 된다는 생각이다.

    사실 도시침술 아이디어는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공원, 광장, 시장, 거리, 골목, 색채, 조명, 기념물, 랜드마크 건물 등에 약간의 변화만 주어도 도시에 활력을 넣을 수 있다. 콜롬비아 메데인은 도심지와 산동네를 잇는 옥외 에스컬레이터와 케이블카 설치를 통해 세계 마약수도에서 통합도시의 롤모델이 되었다. 산동네와 도심지 사이에 접근성이 좋아지고 서로 방문횟수가 늘며 자연스럽게 주민 통합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 도쿄의 충견 하치코 동상은 도시의 명물이다. 하치코는 주인이 죽은 뒤에도 9년 동안 매일 역으로 마중을 나갔던 개다. 시민들은 이 개를 기억하며 동상 옆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이나 버스전용차선 정책도 도시침술의 한 예이다. 자이미 레르네르는 도시침술 주창자로 인구 180만의 브라질 쿠리치바시를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바꿔 주목받은 건축가 출신의 정치인이다.

    좋은 정책도 지역을 살리는 근간이 된다. 화천군은 오래전부터 지역출신 대학생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하는 정책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주민들의 지역 이탈을 막고 춘천 등 외부에서의 학생 유입 효과와 더불어 주민들의 지역사회에 대한 자부심의 근원이 되고 있다. 중국 선전시의 인재유치 정책은 한마디로 파격 그 자체이다. 선전은 1979년까지만 해도 인구 3만명의 바닷가 시골 마을에 불과했다. 강 건너 홍콩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사람이 연간 12만명에 이르고, 강을 건너다 익사하거나 군인들의 총에 맞아 죽은 시체를 수습하는 사람만 200명에 이르던 ‘지옥의 땅’이었다. 이러한 선전이 지금은 인구 2000만명의 아시아 5대 경제도시로 기회의 땅이 되었다. 선전시는 인재 유치를 위해 생활보조금 지급, 주택 지원, 거주자격 부여 등 파격적인 인재유입 정책을 실시하였다. 유입자 중 대졸자는 1만5천, 석사는 2만5000, 박사는 3만 위안을 조건없이 지급했다. 해외에서 오는 인재에게는 ‘인재주택’을 공급했다. 그 결과 중국 내 유명대학의 분교는 물론 수백개의 연구소가 자리잡은 혁신 클러스터로 자리매김했다.

    주민 삶의 질은 지역의 경제, 교육, 치안, 교통, 주택, 환경, 복지 서비스 등과 직결되어 있다. 쇠락하는 도시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들 영역의 결함에서 시작된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일자리가 사라지면 인구가 줄고 활력을 잃게 된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곳에 관광객이 올 리 만무하다. 자녀교육을 위한 마땅한 학교가 없을 때 학부모는 새로운 지역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지역 살리기의 기본 토대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잘못된 인식의 토대 위에 막대한 자원을 투자해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면 안 되는 것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독자적인 노력이나 경험의 축적 없이 다른 지역의 성공사례에서 쉽게 답을 찾으려는 것도 실패의 원인이다. 그들의 성공 사례는 스스로 방법을 찾고 예산의 범위 내에서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이다. 정부 예산을 통한 공모사업은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 이들 사업에는 창의력의 원천인 결핍과 절실함이 없다.

    인생처럼 도시도 흥망성쇄가 있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임시방편으로 쇠락하는 도시에 활력을 넣을 수 없다. 도시의 운명은 산업구조와 인구변화, 정부 정책, 지도자의 안목, 주민들의 태도 등에 영향을 받는다. 지역 살리기 사업을 도박처럼 한 방에 역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필요한 것은 후대에 원망받을 것이 뻔한 대실패를 하지 않는 것이다. 무분별한 도전에 따른 어처구니없는 실패는 다음 세대에게 큰 부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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