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하숙집 있어요!" 강대 앞 '정문하숙'의 스무번째 봄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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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도 하숙집 있어요!" 강대 앞 '정문하숙'의 스무번째 봄학기

    20년간 자리 지킨 강원대 앞 ‘정문하숙’
    늘 학생들 삼시 세끼 챙기는 ‘춘천 엄마’
    “서로 어울리는 모습 볼 때마다 정겨워”
    백숙·감자탕 등 반찬이나 삼겹살 파티도

    • 입력 2023.03.01 00:01
    • 수정 2023.09.07 11:37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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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청춘을 북적대고 시끄럽게, 그리하여 기어코 특별하게 만들어 준 그곳.”

    1990년대 배경으로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한 TV 드라마 속 주인공은 그들이 지내던 하숙을 이렇게 표현했다. 94학번인 이들이 20대 자녀를 둔 부모로 성장하는 동안 대학 앞 분위기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월세 원룸의 등장에 하숙은 점점 자취를 감췄다. “자유분방한 신세대 대학생들에게 공동생활을 하는 하숙집보다 사생활이 보장되고 주인의 눈치를 안 봐도 되는 원룸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한 일간지가 춘천 대학가에 대해 보도한 내용이다.
     

    28일 오전 강원대 부근 '정문하숙'. 유희주(68)씨는 이 자리에서 20년 동안 하숙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28일 오전 강원대 부근 '정문하숙'. 유희주(68)씨는 이 자리에서 20년 동안 하숙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그러나 새 학기를 맞은 대학가 곳곳엔 여전히 하숙이 남아있다. 최근 높은 월세와 물가 부담에 원룸이 아닌 하숙을 선호하는 학생이 늘어났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강원대 부근 ‘정문하숙’은 이번 학기도 6실 만실로 스무번째 봄학기를 맞는다. 정문하숙에서 20년간 하숙생들에게 하루 세끼 식사를 제공하며 100명 이상의 청년을 키워 낸 ‘춘천 엄마’ 유희주(68)씨를 만났다. 

    Q. 하숙을 운영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하숙의 특징은 함께 밥을 먹는 것이잖아요. 이틀만 함께 먹어도 금방 친해지고 일주일이 지나면 어느새 한 식구가 돼요. 또 누가 술을 많이 먹으면 다음 날 옆방 학생이 깨워주기도 하며 옹기종기 어울리는 걸 보면 정겹더라고요.
     

    학생들이 언제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밥솥 옆에 수저와 밥그릇이 놓여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학생들이 언제나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밥솥 옆에 수저와 밥그릇이 놓여있다. (사진=최민준 기자)

    Q. 지내는 학생들 반응은 어떤가요?

    다들 밥도 잘 먹고 인사도 잘하고 친절해요. 넉살 좋은 학생들은 “이모” 하면서 장난도 치죠. 저는 늘 “나중에 길에서 만나면 모른 척하지 마라”고 말합니다. 부모님들 연락도 가끔 받아요. 자식이 연락이 안 된다고요. 그럼 또 제가 확인해서 안심시켜주죠. 집에선 하나같이 다 귀한 자식이잖아요.

    Q. 하숙의 인기는 어떤가요?

    인기가 많이 줄긴 했죠. 코로나19 유행 땐 방이 절반만 나가기도 했어요. 그래도 부모가 혼자 살 자식 걱정에 하숙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1학년 때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둬야 한다”고 말해요. 이제 막 성인이 돼서 집을 떠났는데 혼자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다른 방을 구했다가 바깥 음식에 질려 금방 다시 돌아오는 학생도 많아요. (웃음). 먼저 찾아오는 학생도 여전히 많고요.
     

    '정문하숙' 학생 거주 공간. 100명이 넘는 학생이 이곳을 거쳐갔다. (사진=최민준 기자)
    '정문하숙' 학생 거주 공간. 100명이 넘는 학생이 이곳을 거쳐갔다. (사진=최민준 기자)

    Q. 매번 밥 짓는 게 쉽지 않으시겠어요.

    전혀요. 그게 제 일이니까요. 메뉴 생각하는 것도 큰 고민 없이 잘 떠올라요. 주로 제철 재료를 이용한 요리를 많이 하죠. 학생들이 좋아하는 고기반찬은 꼭 들어가야 해요. 물론 채소도요. 사골, 백숙, 감자탕 등 다양한 음식을 해요. 비 오는 날 파전 같은 특식도 준비하죠. 한 달에 한 번은 집 마당에서 삼겹살 파티도 해요. 저희 하숙 부엌은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늘 열려있습니다.

    Q. 성실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인 것 같아요. 신뢰가 정말 중요하잖아요. 학생들에게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신뢰를 보여줘야죠. 항상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또 학생들이 무료로 들어와 사는 게 아닌 만큼 제가 더 성실해야죠.
     

    유씨는 매일 학생들에게 따뜻한 집밥을 차려준다. (사진=최민준 기자)
    유씨는 매일 학생들에게 따뜻한 집밥을 차려준다. (사진=최민준 기자)

    Q. 하숙을 운영하며 힘든 적도 있었나요?

    10년 전쯤이었어요. 하숙 인기도 떨어질 데까지 떨어지고 세대 변화로 학생들 분위기도 많이 변했죠. 정이 그리웠어요. 예전엔 하숙생들끼리 각자 고향에서 만나 모임 갖고 연락도 자주 왔죠. 그런데 어느새 각자 휴대전화만 보고 밥을 먹는 시대가 된 거예요.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만할까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근데 또 여전히 서로 잘 어울려 지내는 학생들을 보며 힘을 냈죠. 놀면 뭐 하겠어요. 내 역할을 해야죠.
     

    수육, 백숙, 감자탕 등 특식도 식탁에 함께 올라온다. (사진=최민준 기자)
    수육, 백숙, 감자탕 등 특식도 식탁에 함께 올라온다. (사진=최민준 기자)

    Q. 기억에 남는 학생도 있나요?

    학생 전용 방이 모두 나가 한 학생에게 잠시 비어있던 아들 방을 쓰겠냐고 물었던 적이 있어요. 아무리 하숙이라도 주인 부부랑 같이 사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단번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군에 다녀온 후에도 다시 와서 방을 달래요. 다른 집도 가서 살아보라고 하니 싫다더라고요. 그렇게 입학 때부터 졸업 때까지 지내다 갔어요. 돈도 돈이지만 사람은 정이 중요하죠. 어떤 학생들은 떠날 때 편지나 선물을 가져다주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눈물이 핑 돕니다. 큰 보람이죠.

    Q. 앞으로 계획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리고 학생들이 찾아와주는 한 하숙 문은 닫히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제 건강 챙기려고 노력 많이 해요. 건강한 사람이 밥을 해줘야 먹는 사람도 건강해지지 않겠어요?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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