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선의 예감] ‘역사문화권 정비에 관한 특별법’과 ‘예맥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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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의 예감] ‘역사문화권 정비에 관한 특별법’과 ‘예맥문화마을’

    • 입력 2023.02.22 00:00
    • 수정 2023.02.22 15:57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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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김진선 전 도지사를 상면한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도지사 재임 때 요긴하게 활용했던 직원의 빈소에서였으니 심기가 밝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애써 표정을 정리한 그는 본란, 필자의 칼럼에 대한 견해로 말문을 열었다. “잘 읽고 있습니다. 예전 벽서(碧書) 최승순 선생님께서 강원일보에 연재하신 ‘강원문화회고’의 체취가 느껴집니다. 강원문화예술계의 길을 밝히는 일이라 생각해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예의 정갈한 말씨, 과분한 격려에 필자는 곧장 얼어붙었다. 팩트(Fact)에 벗어난 말은 단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벽서 선생님의 마지막(100회) 연재분을 읽으신 지사님께서 원고를 받아 나른 저를 불러 격려해주시고, 책으로 묶어 출간하라시며 지원해 주셨잖아요. 거듭 감사드려요” 기억을 되짚은 김 전 지사는 “벽서 선생님은 우리 강원도의 어른이셨잖아요. 더구나 그분이 기울여 주신 강원문화에 대한 애정과 탐구 업적을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지요”라며 옷깃을 여몄다.

    율곡학회를 결성해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신 벽서 선생은 “우리 시대, 이 땅의 마지막 선비”라고 칭송받았던 어른이었다. 몸소 체험한 20세기 강원문화는 물론이고 고전문학에 남다른 고견을 펴 보였던 학자(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역임)였다. 생의 말년, 삶의 자취를 정리하던 시기였기에 인터뷰를 통해 그에게 질문했다. “아쉬웠던 점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선생께서 입을 열었다. “근데 말이죠. 영남과 호남은 물론이고 기호문화와 중원문화도 대강은 알 듯한데, 강원문화는 여전히 생소해요. 뭐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거예요. ‘관동문화’라는 말이 나돌기도 하는데, 그건 편향적인 게 분명해서⋯평생 학문을 탐구한 입장인데, 적합한 용어를 붙이지 못했으니 한스럽습니다.”

    기억은 그렇다 치고 강원도에 존재했던 선인들의 삶의 자취, 그 궤적을 조명하는 현실은 여전히 난잡하다. 춘천의 역사를 정리‧기록하는 시사편찬사업이 잠정 중단됐다. 시가 편성한 올해 관련 예산을 시의회가 전액 삭감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편찬 규모가 지나치게 방대하고 장기적인 기간으로 인해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는 판단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한국의 역사교과서 이념 논쟁 등에 비춰보면 분명 역사는 객관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국사든 지역사이건 간에 정론이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각도의 고찰과 전문적 식견으로 조명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미시사는 정서와 생업에 직결되기 일쑤여서 더더욱 신중한 자세를 요구한다. 증언과 고증, 역사 현장의 독특하고 고유한 생활 궤적을 명징하게 드러내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문화는 풍성해야 한다. 사건 정리가 아닌, 문화사적 관점에서의 고찰이라는 점에서다. ‘역사문화권’이라는 용어를 주목하는 이유다. 더구나 이 거대한 담론이 제도적, 정책적으로 취급되고 있어서다.

    거대담론의 기조는 2021년 6월에 제정·공포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다. 목적은 역사문화권의 체계적 정비·육성을 위해서다. 문제는 이 법 제정 당시 강원도권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문은 역사문화권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마한, 탐라로 정의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허영 국회의원(춘천·철원·화천·양구 갑)이 이 특별법 개정을 대표 발의, 그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고구려문화권에 속해 있던 고래(古來) 강원인의 자취는 ‘예맥역사문화권’으로 독립 정의됐다. 강원특별자치도로 나가는 역사문화의 근간이자 원천이다. 

    어쨌거나 정책‧법규 용어로 규정됐으니 이견은 무의미하다. 학술적, 정책적으로 예맥역사문화의 본질을 규명해내는 일이 과제다. 실제적인 시책을 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문화재청은 지난해 ‘제1차 역사문화권 정비 기본계획’을 수립‧발표했다. 오는 2026년까지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정부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최응천 박사가 지난해 7월 문화재청장으로 취임했다. 국립춘천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냈고, 한국미술사교육학회장을 역임한 그는 ‘국민이 문화유산으로 행복한 나라’ 만들기를 일성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문화유산을 국가유산 체제로 전면 전환하고, 온전한 보존과 고품격 활용, 문화재와 국민이 상생하는 시책 추진 등을 새 정부 정책 방향이라고 밝혔다. 예맥역사문화를 조명해 내보이는 정부의 실질적 지원을 끌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다. 

    강원도청 이전 부지를 확정한 강원도와 춘천시가 제시한 봉의동 현 청사 활용 구상은 역사문화공원이다. 이러고 보면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을 요긴하게 적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마땅하다. 이름하여 ‘예맥문화마을’이다. 강원도기록관, 도립미술관, 춘천이궁(春川離宮), 도립문학관, 고(古)음악당. 강원문화재단 등이 입주해 시너지 효과까지 창출하는 터전이다. 물론 도청 이전(2028년) 이후에 실현될 사안이다. 그러나 그 플랜의 토대‧기반은 당장, 지금부터 착실하게 다져나가야 할 일이다. 문화재청이 올해부터 특별법에 따른 지원사업을 펴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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