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익의 교육만평] 전장의 천사와 잊힌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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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의 교육만평] 전장의 천사와 잊힌 여성들

    • 입력 2023.01.24 00:00
    • 수정 2023.01.25 06:33
    • 기자명 책읽는춘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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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1954년 3월 13일부터 5월 7일까지 57일간 베트남과 라오스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와 베트민(Vietminh·월맹) 사이에 세기의 전투가 벌어졌다. 여러 차례 영화 소재가 됐던 이 전투는 예상과 달리 우세한 화력의 프랑스군이 완패해 베트남이 프랑스 지배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프랑스군은 2293명이 전사하고 443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만1721명이 포로가 됐다.

    이 전투는 예상치 못했던 프랑스의 패배와 2만여명의 프랑스군 중 단 한 명의 여군으로 인해 서방 언론들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즈네비에브 드 갈라르 중위는 프랑스 공군 소속의 항공 간호사로 디엔비엔푸 전투에 투입됐다. 그녀가 속한 공군 팀의 임무는 하노이 프랑스군 사령부에서 C-47 수송기를 타고 200마일을 날아 디엔비엔푸 프랑스군 진지에 착륙, 부상자를 실어 하노이로 후송하는 것이었다. 1954년 3월 27일 40번째 비행 중 그녀가 탄 비행기는 엔진 고장을 일으켜 디엔비엔푸 활주로에 비상 착륙했고, 이어진 베트민군의 포격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이로써 그녀는 프랑스군 중 전장에 갇힌 유일한 여군이 되었다.

    전투는 베트남의 전쟁 영웅 ‘붉은 나폴레옹’으로 불리는 보 응우옌 잡 장군의 3불 전략(적이 원하는 장소, 시기, 방식으로 싸우지 않는다)에 따라 프랑스군은 처절한 패배를 맞으며 결국 항복했다. 즈네비에브 역시 베트민군의 포로가 됐지만 다행히 전장에서 부상병을 계속 치료하도록 허가받았다. 1만명이 넘는 프랑스군 포로들은 200마일 떨어진 베트민 포로수용소까지 60일간 행군해야 했고, 행군 중 서로 부축하거나 돕는 행위는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이들 중 포로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프랑스로 귀환한 병사는 3500여명에 불과했다.

    즈네비에브는 40일간 프랑스군으로, 17일간 포로로 부상병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믿기지 않는 프랑스의 패배와 전장에서의 단 한 명 여군의 존재는 날이 갈수록 언론의 관심을 받았고, 어느 순간부터 언론은 그녀를 ‘천사’로 부르기 시작했다. 세계적 관심에 부담을 느낀 베트민은 그녀를 프랑스군이 있는 하노이로 석방했다. 1954년 6월 초순 프랑스로 귀국한 그녀는 공항에서 영웅으로 환영받았고, 잡지 표지인물로 등장하며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7월에는 미 국무장관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뉴욕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어서 워싱턴으로 날아가 하원을 방문하고 백악관에서 아이젠하워 대통령으로부터 ‘올해의 여성’으로 불리며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베트남에서 만난 프랑스군 장교와 1956년 결혼해 세 자녀를 두고 지금까지 파리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2010년에는 ‘디엔비엔푸의 천사: 디엔비엔푸 전투의 유일한 프랑스 여인’이라는 자서전을 출판해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즈네비에브가 디엔비엔푸의 유일한 여성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서방 언론들은 그녀를 영웅으로 만들면서 다른 여성들의 존재는 철저히 숨겼다. 버나드 펄은 디엔비엔푸 전투를 내내 현장에서 취재한 미국 종군기자로, 1966년 ‘아주 작은 지옥: 디엔비엔푸 포위작전(Hell in a very small place: The Siege of Dien bien phu)’이라는 저서를 출판했다. 이 책에 따르면 전투가 벌어지기 전부터 프랑스군 진지에는 두 곳의 야전 매춘업소가 있었다. 한 곳에는 베트남 여성 7명, 다른 한 곳에는 알제리에서 온 베르베르족 출신 여성 11명이 있었다. 베트민 포격으로 비행기로 인한 의료수송과 보급이 중단되고 부상자가 늘어나자, 프랑스군은 이 여인들에게 응급처치 훈련을 시킨 후 부상병 치료에 투입했다. 사실상 즈네비에브와 같은 일을 수행한 것이다.

    이 여인들은 물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지하 벙커에서 프랑스 부상병 치료에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프랑스군 항복 전까지 11명의 알제리 여성 중 4명이 전장에서 죽고, 나머지는 프랑스군 항복 후 포로들과 함께 수용소 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중 한 여성은 알제리 출신 병사와 결혼해 하노이 공산 치하에서 첫아이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7명의 베트남 여성들은 체포돼 베트민 재교육 캠프로 보내졌다고 한다.

    빛나는 승리, 불세출의 영웅, 잔잔한 전우애라는 전쟁 미화 속에는 이름 없는 죽음과 가려진 진실이 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한 한국인 병사들이 전투에 투입돼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는 사실도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전장에서 자신의 임무를 다한 즈네비에브의 헌신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잊힌 다른 여인들의 이야기는 전쟁의 또 다른 슬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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