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이냐, 내 집 마련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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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이냐, 내 집 마련이냐

    ■ [칼럼] 권소담 경제팀 기자

    • 입력 2023.01.18 00:01
    • 수정 2023.01.19 00:06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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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풍 심하고 녹물 나오는 전셋집에서 애를 어떻게 낳아.” 결혼 3년 차 지인의 하소연이다. 입주한 지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꾸렸는데, 주거 환경이 나빠 지금 사는 전셋집에 거주하는 이상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새 아파트를 사서 이사해도 문제다. 30대 초반, 축적한 자산이 적어 주택 매입 자금 대부분을 은행에서 빌려야 하는데 치솟은 이자를 감당하기에는 상환 부담이 커진 탓이다.

    출산이냐, 내 집 마련이냐. 집 없는 대다수 신혼부부와 청년층의 고민이다. 급격한 집값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겪으며 경기가 악화하자 자녀와 주택 사이에 양자택일의 구조가 고착됐다. 집을 사는데도 아이를 낳아 키우는데도 돈이 많이 드니, 마음 편히 둘 다 선택할 수는 없다. 가계의 비용 지출에 대한 전략적 판단에서 결국 출산은 점점 후순위로 밀려나게 됐다.

    집값이 오르면 자녀를 안 낳는다는 실질적인 연구 결과도 나왔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주택가격 상승이 출산율 하락에 미치는 동태적 영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년도 주택가격이 1% 상승할 경우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은 0.002명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과 양육을 경제적 이득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질수록 아이를 피하는 추세가 강해진다. 같은 연구에서 1명의 자녀를 26세까지 양육하는데 평균 6억1583만원이 든다는 결과도 제시됐다.

    집값이 오르면 합계출산율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인구 정책에 대한 경제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집값이 오르면 합계출산율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인구 정책에 대한 경제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 역시 집값 상승기를 겪으며 합계출산율이 1명 아래로 내려갔다. 현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인 2.1명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특히 본격적인 집값 상승이 시작된 2020년에는 춘천지역 합계출산율이 처음으로 1명 밑으로 떨어져 0.975명을 기록했다. 2021년 춘천지역 평균 주택가격이 8.1% 상승하는 동안 합계출산율은 0.073명(7.5%) 감소했다.

    2019년 11월 당시 1억7384만원이었던 춘천지역 평균 아파트 가격은 3년 만에 5411만원(31%) 오른 2억2795만원이 됐다. 이에 더해 지난해부터 금리 인상을 겪으며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금융 비용이 늘어나 실질적인 내 집 마련 부담이 커졌다.

    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강원지역 주택구입부담지수는 44.5로 전년동분기(33.4) 대비 11.1p 올랐다. 중간 정도의 소득 수준인 가정이 표준적인 대출을 받아 중간가격의 주택을 구매할 때의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로, 그만큼 집을 마련하는데 부담이 커졌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0.25%p 오를 때 전체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3조3000억원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대출자 1인당 연간 이자 부담은 평균 약 16만4000원 증가하게 된다. 지난 1년간 기준금리가 2.25%p 증가했으니 가계의 이자 부담은 평균 147만6000원 늘어난 셈이다. 금리가 상승해 가계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1%p 오르면 가계소비는 평균 0.37% 감소한다는 분석 결과는 그만큼 소비가 위축되고 가계 경제가 팍팍해진 상황을 드러낸다.

    사회규범이 요구하는 대로 20대 후반 결혼을 하고 30대 초반 들어 자녀를 낳기에는 경제적 여건이 너무 나빠졌다. 아이를 1명 낳더라도 경제적 안정을 이룬 30대 후반으로 출산 연령이 늦어지고 있다. 2021년 기준 춘천지역 평균 출산 연령은 32.9세로 10년 전(31.2세)보다 2살 가까이 늘어났다. 출산한 여성의 나이대도 30~34세(632명)와 35~39세(400명)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초산이 늦어질수록 둘째를 출산할 가능성은 더 줄어든다.

    국민연금을 감당할 젊은 인구가 사라지고 저출산 고령화로 건강보험료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인구 문제로 인한 부작용을 경고하는 보도와 연구가 쏟아진다. 이런 프레임에는 곧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가 되고, 병원에 자주 가야만 하는 기성세대 관점의 우려가 녹아 있다. ‘한민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민족주의적인 경각심도 함께. 그러나 ‘출산이 애국’이라는, 도덕적 당위성과 집단주의에 호소한 사회적 관념과 정책 방향으로는 인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출산도 결국은 돈의 문제다. 신혼부부가 자녀 출산을 경제적 효용의 관점에서도 유리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유도책이 필요하다. 부동산과 일자리, 임금, 금융 같은 다각도의 경제적 측면에서 인구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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