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로 초충도를 주제로 한 특별전 ‘미물지생(微物之生), 옛 풀벌레 그림 속 세상’이 오는 25일까지 국립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진경산수화로 유명한 정선, 풍속화로 이름난 김홍도의 초충도,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초충도 10폭 병풍’을 비롯한 79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이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박물관 브랜드인 ‘힐링’과 더 나아가 ‘공존’을 추구해온 박물관의 정체성과도 맞닿아있는 전시다.
특별전에서는 옛사람들이 바라본 풀벌레의 세계를 조명한다. 선조들은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과 같은 자연물뿐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작은 벌레까지도 배움의 대상으로 삼았다. 미물이 사는 작은 세상에 치열한 삶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교훈으로 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풀벌레를 그리려면 그 날고 번뜩이고 울고 뛰는 상태가 살려져야 한다.”-'개자원화전' 화초충법 중
옛 화가들은 풀벌레의 모양과 색깔, 움직임 등을 자세히 관찰했다. 있는 그대로 그려야 풀벌레가 지닌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날고, 울고, 뛰고, 기는 동작을 잘 살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전시 구성에 이 같은 옛 화가들의 생각을 녹여냈다. 전시 공간은 ‘날고, 울다’ ‘뛰고, 기다’ ‘풀벌레를 관찰하는 시선과 화법’ 등 3부로 나눠 각각의 주제에 맞는 작품들을 배치했다.
1부 ‘날고, 울다’는 나비와 매미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나비는 장수를 상징해 가장 많이 그린 소재였으며 매미는 군자가 지녀야 할 오덕을 지닌 벌레라 선비들이 특히 좋아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김홍도의 ‘협접도(蛺蝶圖) 부채’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품인 이경승의 ‘호접도(胡蝶圖) 10폭 병풍’ 심사정의 ‘계수나무에 매달려 우는 매미’ 등을 감상할 수 있다.
2부 ‘뛰고, 기다’에서는 주로 기거나 뛰어다니는 벌레들이 주인공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정선의 ‘여뀌와 개구리’, 신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강릉 오죽헌시립박물관 소장 ‘초충도 화첩’ 등을 만날 수 있다. 풀 속에서 벌레와 함께 사는 개구리, 도마뱀, 고슴도치 등 작은 동물들을 그린 작품도 볼 수 있다.
단연 고슴도치를 그린 작품들이 인기다. 고슴도치는 몸을 굴려 가시에 오이나 작은 과일을 꽂아 가져갔는데 옛사람들은 이를 두고 빚을 진 사람과 비슷하다고 여겨 ‘고슴도치가 외 따지듯(고슴도치가 오이를 걸머지듯)’이라는 속담을 만들기도 했다. 고슴도치는 가시가 많고 오이는 씨가 많아 오이를 짊어진 고슴도치 그림에 다산의 바람을 담은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3부 ‘풀벌레를 관찰하는 시선과 화법’에서는 화가들이 풀벌레를 보는 시선과 화법을 소개한다. 옛 화가들은 사생을 통해 풀벌레의 모양과 색깔을 관찰하고 화보를 보면서 풀벌레의 동작이나 구도를 익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1825~1854)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화조초어도'(花鳥草魚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그림 교재였던 ‘개자원화보(芥子園畫譜)’, ‘초본화시보(草本花詩譜)’ 등을 볼 수 있다.
과거와 현대로 이어지는 ‘공존’에 대한 시도도 눈길을 끈다.
전시장 입구부터 관객과 작품이 상호작용하는 형식의 인터랙티브 영상이 전시된다. 잠자리, 쇠똥구리 등 전시 작품에 등장하는 곤충들을 참고해 제작됐다. 과거뿐 아니라 동시대 작가가 그린 같은 주제의 작품도 전시한다. 고양이 민화 그림으로 유명한 혜진 작가의 ‘미물지생’을 포함한 다양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속 실제 그림인 ‘금묘호접도’도 전시되고 있다. 시대를 넘나드는 풀벌레 그림을 매개로 시대의 공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전시를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매주 수, 목요일마다 ‘풀과 벌레를 담은 석고 마그네틱’ 체험이 운영된다. 생명의 소중함을 주제로 한 체험이다.
김울림 국립춘천박물관장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작은 세상을 공존이라는 가치 속에서 마주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윤수용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