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익의 교육만평] 명왕성(冥王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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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의 교육만평] 명왕성(冥王星)

    • 입력 2023.01.10 00:00
    • 수정 2023.01.10 16:00
    • 기자명 책읽는춘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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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그리스·로마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죽으면 어둠의 세계로 간다고 한다. 어둠의 세계를 한자로 명계(冥界)라 한다. 명계를 다스리는 왕(冥王)의 이름은 그리스어로는 하데스(Hades)이며 라틴어로는 플루톤(Pluton·영어 이름은 Pluto)이다.

    신화에서 죽음은 영혼이 신체를 떠나는 것으로, 신체를 떠난 영혼은 제일 먼저 비통의 강 아케론(Acheron)에 도착한다. 이 강에는 카론(Charon)이라는 뱃사공이 있어 망자에게 노잣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서양에서 장례 때 망자의 입에 돈을 넣어주는 풍습은 성격 괴팍한 카론이 망자들에게 뱃삯을 요구한데서 유래했다. 이 강을 맨 먼저 건너는 이유는 비통한 마음을 씻어내기 위해서이다.

    비통의 강을 건너면 이어서 시름의 강 코키토스(Cocytus)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이승에 남은 가족에 대한 시름과 걱정을 씻어낸다. 세 번째 강은 불길의 강 플레게톤(Phlegethon)이다. 여기에서는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감정을 모두 불태운다. 마지막 망각의 강 레테(Lethe)를 건너면서 망자는 모든 것을 잊는다. 아케론, 코키토스, 플레게톤, 레테는 육신과 관련된 모든 감정의 고리를 끊어내는 강이다.

    이 네 개의 강을 건너도 생전의 행위와 관련된 업보는 씻기지 않는다. 네 개의 강 너머에는 이승에서의 행위를 심판하는 하데스의 궁전이 있다. 궁전에는 명계를 다스리는 명왕 하데스(Hades),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Persephone)와 세 명의 심판관이 있다. 심판을 통해 올바른 삶을 산 사람은 오른쪽 길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왼쪽 길로 가야 한다.

    엘리시온(Elysion)은 올바른 삶을 산 사람이 도착하는 세계 이름이다. 올바르지 못한 삶을 산 사람들은 타르타로스(Tartaros)라 불리는 지옥으로 간다.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은 저승을 아홉 바퀴 도는 증오의 강 스틱스(Styx)를 건너야 하는데, 이곳에서 심판 결과에 대한 증오심을 씻어낸다. 지옥에 도착하면 입구에 머리가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Kerberos)가 지키고 있다. 케르베로스는 지옥문 안으로 들어간 어떤 영혼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지키는 역할을 한다.

    1930년 2월 28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골 출신 24세 아마추어 천문학도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는 새로운 별 하나를 발견했다. 나중에 이 별은 영국의 11세 초등학생 베네치아 버니가 제안한 ‘명왕성(冥王星·Pluto)’으로 명명되었다. 명왕성은 해왕성 너머 우후준순처럼 발견되는 얼음 천체 무리 속에 위치한 가장 큰 별이기에, 어둡고 축축한 망자의 거주지를 관장하는 신 플루토를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다.

    처음 천문학자들은 명왕성을 지구 질량의 18배인 해왕성의 크기와 질량이 비슷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1978년 명왕성 가까이에서 카론(Charon)이라는 거대한 위성이 발견되면서 명왕성의 질량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다. 위성과의 비교를 통해 명왕성의 실제 질량은 태양계에서 가장 작은 행성인 수성 질량의 5%, 지구질량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크기, 궤도 등을 근거로 2006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천문연맹총회는 명왕성을 ‘왜소행성’으로 강등하여 태양계 행성 지위에서 퇴출시켰다. 명왕성의 위성은 지금까지 다섯 개가 발견되었다. 다섯 개 위성 이름은 모두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유래한 카론(Charon), 닉스(Nyx·밤의 여신), 히드라(Hydra·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뱀), 케르베로스(Kerberos), 스틱스(Styx)이다.

    명왕성이 ‘퇴출’되기 전 우리는 ‘수·금·지·화·목·토·천·해·명’으로 태양계 행성 순서를 외웠다. 이러한 학습 방법은 미국도 비슷했다. 수성(Mercury)-금성(Venus)-지구(Earth)-화성(Mars)-목성(Jupiter)-토성(Saturn)-천왕성(Uranus)-해왕성(Neptune)-명왕성(Pluto)의 앞 글자를 딴 암기를 위한 다양한 노래가 유행하였다. 그중 유명한 것은 “My Very Educated Mother Just Served Us Nine Pizzas(교양 많은 우리 엄마가 우리에게 아홉 판의 피자를 내 놓았다네”였다.

    2013년 개봉되어 칸 영화제에 초청된 신수원 감독이 만든 ‘명왕성’이란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한 사립 명문고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과 인질극을 통해 입시 위주의 교육 문제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다룬 영화다. 왜 제목을 명왕성으로 했을까. 아마도 명왕성의 운명처럼, 친구 무리에서 퇴출되는 아이들의 감정이나 모습을 이입시켜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태양계 맨 끝 어둠 속 천체 무리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을 명왕성을 생각하노라면, 세세한 인간사를 잠시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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