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문화 흔드는 관치, 일방적 행정 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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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문화 흔드는 관치, 일방적 행정 사라져야

    ■[칼럼] 한승미 문화팀장

    • 입력 2022.12.29 00:01
    • 수정 2022.12.30 07:20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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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문화재단과 강원도립극단의 통폐합이 관계자와의 공식 논의 절차 없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에는 예산 지원 중단으로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폐지되는 등 강원도의 톱다운식 관치행정에 강원 문화계가 휘청이고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문화재단과 강원도립극단의 통폐합이 관계자와의 공식 논의 절차 없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에는 예산 지원 중단으로 평창국제평화영화제가 폐지되는 등 강원도의 톱다운식 관치행정에 강원 문화계가 휘청이고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얼마 전 강원도립극단이 창단 10주년을 맞았다. 경사스러운 일이었다. 이를 축하하기 위한 기념식이 열렸지만, 행사장 분위기는 묘하게 침울했다. 며칠 전 나온 한 매체의 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

    기사는 강원도가 출자·출연기관에 대한 혁신을 본격화한다는 내용이었다. 26개 기관을 22곳으로 축소하는 안에 강원도립극단과 강원문화재단의 합병안이 포함됐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두 기관 모두 몰랐던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다음날에는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이 사임하고, 다른 지역 문화재단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임직원의 불안감은 커졌다.

    이날 극단 기념식에서는 10년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영상이 상영됐다. 지난 성과를 짚는 내용 가운데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대한민국 공립극단 중 유일한 독립된 연극법인 체제 운영’이라는 부분이다.

    강원도립극단은 전국 공립극단 가운데 유일하게 독립된 연극 전문법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대다수의 국공립극단이 문화예술회관 하부에 종속된 것과 대조적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기관 종속에 따른 지배구조 문제가 있어 독립성과 공공성을 위해 재단 법인화 등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원도립극단은 전국 유일의 전문법인 체제로 선진사례로 꼽히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강원도립극단 사례가 언급됐고, 극단 관계자는 제주도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해 재단법인 운영의 장점을 발표하기도 했다. 선진사례로 꼽히고 있는 전문법인을 문화재단에 통합하는 것이 바른 방향인지 의문이 든다.

    해단식 같은 기념식을 마친 극단은 현재 올 스톱 분위기다. 예술감독 자리도 공석이다. 전임 감독 사임 이후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 채용 공고조차 나오지 않는 것은 비정상이다. 내부에서는 강원도 눈치만 보고 있다. 감독 채용 일정은 강원도와 협의해야 하는데 관련 지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출자·출연기관과의 관계가 ‘협의’라기보다 ‘통보’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가늠해볼 수 있다.

    문화계에서는 합병 방침을 두고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극단은 창작 활동을 하는데 문화재단은 행정지원 조직이라 업무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극단이 행정지원 조직에 합병됐다가 활동에 제약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가 나왔지만, 재단과 극단 합병 방침이 김진태 강원도지사에게 올라가기까지 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는 공식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문화예술과에 따르면 합병과 관련해 과 차원의 사전 보고나 논의는 없었다. 도 관계자는 “지휘부에서 결정된 사항으로 일방적으로 통보받는 식”이라며 “구체적 방안이나 시기, 확정 여부 등도 전혀 알지 못한다”고 전했다. 업무 연관성 등에서 합병이 타당한지 사전 공식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전형적인 ‘톱다운식(하향식)’ 관치행정이다.

    단, 도 관계자는 통합했을 때 재단과 극단이 각자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고, 서로 역할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직원들도 한곳에 한정되지 않고 승진 등의 발전 가능성도 클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각 기관에 대한 비전을 가진 임직원에게 타 직종으로의 인사이동 가능성이 반가운 일은 아니다. 재단 직원 처우 문제도 크게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강원도의 톱다운식 행정이 지역 문화를 흔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지난 8월 강원도가 예산 지원 중단을 통보하면서 영화제 폐지가 결정됐다. 직원 전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영화제 관계자들은 행사는 열지 못하더라도 소규모 사업을 하며 이름은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펼칠 예정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강원도에서 찬밥 신세가 된 영화제 성과를 짚는 자리가 내년 충남 천안에서 열린다는 점이다. 

    강원도는 28일 두 기관의 통폐합을 결정했다. 합병에 앞서 강원문화재단이 재단 성격과 다른 극단을 잘 운영할 수 있을지도 살펴봐야 한다. 앞서 강원국제비엔날레는 지속 개최와 예산 수립, 안정적 운영을 위해 강원문화재단으로 흡수됐다. 올해 강원트리엔날레(옛 강원국제비엔날레) 예산은 2억여원으로, 목표 예산에서 75%가 줄었다. 감독 선임도 어려운 예산으로 의회에서도 행사 개최 의지가 있는 예산이냐는 지적이 나왔다. 안정적 운영을 내세운 재단 흡수 결정이 오히려 악재가 된 사례다.

    강원도립극단 기념식에서는 태백에서 열린 모든 극단 공연을 봤다는 한 주민이 단상에 섰다. 최다관극상을 받은 그는 “연극 3대 요소 중 하나인 관객 역할에 충실했던 것뿐”이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역 문화가 살고 행정이 박수를 받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고 무엇이 사라져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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