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청년’ 지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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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에서 ‘청년’ 지우기

    ■ [칼럼] 권소담 경제팀 기자

    • 입력 2022.12.22 00:00
    • 수정 2022.12.22 10:43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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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만4593명. 올해 11월 기준 춘천 인구의 26%를 차지하는 19~39세 청년 인구 수다. 2008년 8만248명, 전체 인구의 31%였던 청년층은 이후 8만명 선이 무너지며 14년 만에 5655명(7%) 감소했다. 대학 도시, 청춘이 살아 있는 춘천은 갈수록 지역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

    청년 인구 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부터 춘천시 청년발전 지원 조례가 시행됐다. 사회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창업과 일자리 창출, 자립 기반을 마련해 청년들이 지역사회에서 성실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지원한다는 취지였다. 이 조례에 근거에 2019년 11월 ‘춘천시청년청’이 본격 업무를 시작했다.

    청년청은 지난 3년간 청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청년이 생활에서 필요성을 느낀 정책을 발굴하기 위해 각종 논의의 장을 마련했다. 청년청 사업에 직접 참여한 청년들의 규모는 매년 700~800명. 청년 시민 공론장 등을 통해 의견을 개진한 간접 참가자는 3000여명이다. ‘춘천 청년’의 5% 이상이 청년청에서 마련한 숙의의 장에 참여하고 더 나은 춘천을 위해 고민했다는 의미다.

    취약한 대중교통 인프라에 대한 개선책으로 전기 자전거 활성화를 제안하고, 청년 근로자에 대한 복지 지원을 주장한 이들은 청년청 청년의회의 각 분과 참여자였다. 이 제안은 전기 자전거 보조금과 청년 근로자 복리후생비 지원 등 춘천시의 실제 정책으로 이어졌다. 청년 인구 유출의 근본적인 이유가 낮은 임금과 부족한 자기계발의 기회, 열악한 문화 환경에 있다고 판단한 청년들이 고심한 결과였다.

    청년 시민 공론장에서 여행지에 윤리적, 환경적,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여행 방식을 추구하는 ‘공정 여행’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직장인, 소상공인, 학생 등 다양한 청년들이 참여해 ‘춘천 웰컴 키트’를 기획하며 지역 관광 산업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졌다. 끈끈한 청년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기능하며, 연고 없이 춘천으로 온 청년들의 ‘이웃’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춘천시청년청은 청년을 중심으로 춘천지역 정책 의제를 발굴하고 공론의 장 역할을 해왔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시청년청은 청년을 중심으로 춘천지역 정책 의제를 발굴하고 공론의 장 역할을 해왔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최근 춘천시의회에서 청년청의 내년 예산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시 사업과 업무가 일부 중복되고, 특정 조직을 집중 지원한다는 이유로 담당 상임위인 기획행정위원회는 내년 당초 예산안 심의에서 시가 상정한 청년청 운영비 5억30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청년청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1인 시위에 나섰다.

    청년청 예산 5억여원 중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사업비는 3억원 수준이다. 청년 인구 1인당으로 환산하면 4021원. 7만명이 넘는 춘천 청년을 대표하는 기관임을 고려하면 크지 않은 액수다. 올해 춘천시 본예산에 편성된 춘천시 업무추진비(12억3864만원), 시의원 활동비‧여비‧국민연금 및 건강보험 부담금 등을 포함한 의회비(13억9669만원)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청년청 폐지 논란은 한 공공기관의 존속 여부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이번 논란으로 잠재돼 있던 지역 내 세대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청년들은 “춘천에 거주하는 청년이라면 참여 제한 없이 누구나 공론장에서 논의할 수 있는 청년청을 없애려는 것은, 청년의 목소리를 막으려는 기성세대와 기득권의 억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청년들은, 새로운 의견으로 목소리를 내는 젊은이들은 사라져야 하는 걸까. 혹시 지역에서 청년이 지워져야만 하는 이유는, 이런 청년 공론장이 지금의 시의회 다수당과 갈등을 빚었던 전 시장의 기조 아래 만들어져서일까.

    대학생 전입 장려금으로 매년 1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현금성 지원에 나서는 것보다는, 이들이 졸업 후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청년이 살기 좋은 춘천’을 만드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청년청에 참여하는 청년 활동가의 80%는 춘천 출신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춘천으로 이주해온 이들이다. 청년들의 ‘쓸데없는’ 시행착오 속에서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결과가 꽃피어 난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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