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아파트 1만채가 매년 사라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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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아파트 1만채가 매년 사라진다면

    [기자수첩] 권소담 경제팀 기자

    • 입력 2022.12.07 00:00
    • 수정 2022.12.07 17:20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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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조6000억원. 건강보험 재정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원 보고서를 읽으면서 ‘0’의 개수를 제대로 본 게 맞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올해 7월 감사원은 건강보험 재정정책의 의사결정 구조와 지출관리제도 등을 감사, 분석해 개선점을 발표했다. 그 결과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등이 감사결과를 잘 이행한다면 연간 2조6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 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출 개선으로 연 8000억원을 아끼고 수입 부문에서는 1조8000억원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2조6000억원은 평균 2억3060만원인 춘천지역 아파트를 1만1275채나 살 수 있는 돈이다. 그것도 매년.

    앞서 기획기사를 통해 춘천지역 의료 현장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와 과잉진료 사례에 대해 살펴봤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어떻게 늘어나고 있는지도 짚었다. 다만 이런 도덕적 해이가 특정 병원이나 의료인의 일탈이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 관리체계의 문제에서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보건당국의 제대로 된 관리 부재로 인해 향후 40년간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픽=MS투데이 DB)  
    보건당국의 제대로 된 관리 부재로 인해 향후 40년간 건강보험 재정 적자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픽=MS투데이 DB)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은 의료 행위별로 각각 진료비를 지급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기본 제도로 채택하고 있다. 의료인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건별 가격을 정해 보상하는 방식으로, 각 병원에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효율적인 의료서비스 대신 과잉진료를 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행위별 수가제 대신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하는 진료에 대해 질병마다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포괄 수가제’를 확대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보건복지부는 의료계가 반대하자 포괄 수가제를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있다. 현재 7개 질병군에 적용돼 급여 비용의 6.6%만을 차지하는 포괄 수가제는 의료 비용 관리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 일일이 개별 의료행위를 심사할 필요가 없어 심사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도 가져왔다.

    병원에서 청구한 진료비는 심평원의 심사를 거쳐 건보공단이 지급한다. 2020년 의료기관이 심평원에 접수한 급여비용 청구‧심사는 12억7634만건, 청구 진료비는 86조8339억원이었다. 이중 청구 금액이 심사 과정에서 조정된 경우는 건수 대비 2.6%(3만2514건), 금액 대비 0.4%(3306억원)에 불과했다. 2016년에는 전체 청구 건수 중 3.6%, 금액으로는 0.8%가 조정됐던 것에 비하면 조정 실적이 절반으로 줄었다. 병원에서 건보 재정에 청구한 대부분의 의료 행위에 대한 비용이 심사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지급된다는 의미다.

    건보 가입자가 부담하는 본인부담금의 총액이 일정 금액을 초과하는 경우 건보 재정에서 초과금액을 부담하는 ‘본인부담상한제’도 필요 이상의 과도한 의료 서비스 이용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다. 상한액 이상의 의료 이용에 대해 본인 부담이 면제되니 과잉진료를 요구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민간 실손보험 가입자의 경우 상한제 환급액과 보험액을 이중수령하면서 진료를 받을수록 금전적 이득이 발생하는 사례도 있다.

    이달 1일. 매월 초 시민들이 기를 쓰고 구입하는 모바일 춘천사랑상품권 앱이 먹통이 됐다. 10% 할인율을 이용해 2만원을 아껴보겠다고 2시간 동안 초조하게 스마트폰만 들여다본 서민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해프닝이었다. 

    현 체제가 유지된다면, 2060년 건보 재정은 5765조원의 적자가 발생할 것이란 전망이 있다. 뉴욕 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3046조원)을 통째로 사고도 남을 정도로 큰돈이다. 이런 천문학적인 ‘국민의 돈’이 매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2만원을 더 중요한 일처럼 여겼다. 사람들이 작은 것에 분노할 동안 존재를 지운 ‘대도(大盜)’는 평범한 서민이 상상할 수도 없는 큰돈을 주무르고 있었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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