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들이는 '춘천시사' 편찬⋯신문모음집만 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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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억 들이는 '춘천시사' 편찬⋯신문모음집만 8권

    [시대 역행 춘천시사편찬위원회] 上
    20권도 많은데, 40권으로 늘어
    인구 120만 수원도 20권 간행
    사료집만 10권⋯사업 중복 우려
    전문가 “책자 대신 DB화 해야”

    • 입력 2022.12.08 00:02
    • 수정 2022.12.22 11:47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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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반세기 만에 춘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춘천시사'가 선보인다. 춘천시는 지난해 지역 정체성 강화와 지역문화 우수성을 고양하겠다는 취지로 '춘천시사' 편찬 추진 계획을 수립했다. 시사가 편찬된 지 25년이 지남에 따라 시 변천사를 지속해서 기록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추진 근거다. 시는 ‘지속가능한 춘천’을 모토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시사 편찬을 목표로 삼았다. 춘천시는 강원도 수부도시로 지정된 지 100주년이 되는 1996년 ‘춘천 100년사’를 발간했다. 앞서 1984년에는 ‘춘주지’가 발행됐다. MS투데이는 최근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춘천시사' 편찬의 문제점 등을 집중 진단한다. <편집자 주>

    춘천시는 내년 첫 사료집 제작을 시작으로 오는 2031년까지 '시사'를 편찬·간행한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대학교수, 연구자, 시의원 등 9명을 편찬위원으로 위촉해 체제를 갖췄다. 시와 춘천시사편찬위원회는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4차례에 걸친 회의를 통해 총 40권 규모의 '시사'를 간행하기로 했다.

    시는 춘천시사 예산을 포함한 2023년 예산안을 지난달 21일 춘천시의회에 제출했다. 내년도 예산안은 1조6009억원 규모로 지난해 당초 예산인 1조4977억원 대비 1032억원 증가했다. 예산안에는 시사 편찬을 위한 사업비(2023년 예산 9526만6000원)도 포함됐다. 첫해 예산은 작은 규모이지만, 총 사업비 추정예산액은 40억원에 달한다.

    시의회에서 예산안이 확정되면 내년 사료집 발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사편찬 작업에 돌입한다. 하지만 시작 전부터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다른 지역 시사편찬 관계자들은 “춘천의 시사편찬은 30년 전을 보는 것 같다”며 “최근의 편찬 트렌드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강원도 빅3 도시인 춘천에서 시사편찬이 잘못되면 한동안 강원도 시·군에서 유사한 연구를 못 할 것”이라며 “빠르게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춘천시사' 편찬을 추진하고 있는 춘천시가 내년 사료집을 간행할 계획인 가운데 사업 시작 전부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에 발간되는 시사는 1984년 '춘주지'(사진 왼쪽), 1996년 '춘천 100년사'(가운데)에 이은 세 번째다. 맨 오른쪽은 ‘춘천시사’ 예시 이미지.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시사' 편찬을 추진하고 있는 춘천시가 내년 사료집을 간행할 계획인 가운데 사업 시작 전부터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에 발간되는 시사는 1984년 '춘주지'(사진 왼쪽), 1996년 '춘천 100년사'(가운데)에 이은 세 번째다. 맨 오른쪽은 ‘춘천시사’ 예시 이미지. (그래픽=박지영 기자)

    지난해 5월 12일 등록된 '춘천시사' 편찬 추진 계획을 보면, '시사'는 춘천시의 정체성을 살리는데 편찬 방향을 두고 있다. 골자는 과거 관찬(官撰) 사료 중심의 형식에서 벗어나 생활사·문화사적 접근으로 시민의 생활문화와 삶의 경험을 서술·반영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제안된 편찬체제와 목차는 20권으로 구성된 1안과 10권 구성의 2안이었다. 두 개 안 모두 총 4개 영역으로 나눠 △지리 △역사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주제사 △댐·음식·관공서·캠프페이지를 중심으로 한 구술사 등을 다루겠다는 계획이었다. 이후 춘천시사는 20권을 제작하는 1안으로 채택됐다.

    ▶인구 4배 수원시 20권⋯춘천은 40권?
    이로부터 나흘 뒤 춘천시사편찬위원회가 구성돼 9명의 위원이 위촉됐다. 위원들은 이날 첫 회의를 통해 편찬체제 등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20권 분량도 많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본지가 입수한 5월 16일 춘천시청 중회의실에서 열린 제1차 편찬 회의의 회의록에는 “20권 정도로 이렇게 방대한 (분량은) 강원도에서 처음이에요”라는 언급이 나온다. 또 “분량이 많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라고 보거든요”, “기초연구나 조사가 부족한 상태에서 많은 것들을 내보면 불필요한 것들이 많이 들어가게 돼 있어요” 등의 지적도 나온다. 

     

    춘천시사편찬위원회 초기 회의에서는 20권도 많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현재는 사료집을 포함한 40권으로 늘어났다. 특히 사료집 상당 부분은 일제강점기 신문 자료가 차지하고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시사편찬위원회 초기 회의에서는 20권도 많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현재는 사료집을 포함한 40권으로 늘어났다. 특히 사료집 상당 부분은 일제강점기 신문 자료가 차지하고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이 같은 지적이 나왔지만, 이후 3차 회의에서 편찬체제는 34권으로 늘어났다. 현재는 40권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새롭게 시사를 편찬한 경기도 수원시는 지자체 시사편찬 사업의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춘천시는 첫 회의에 앞서 시 관계자, 춘천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수원을 방문했다. 첫 편찬 회의 때 수원시사 관계자는 위원들을 대상으로 사례를 소개하고 시사편찬 방향과 춘천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수원시의 시사편찬 사업 기간은 5년 3개월로 15억8800만원의 경비가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간행 권수는 총 20권으로 1~10권은 수원의 지리적 환경, 도시 공간과 구조, 정치 변동과 지방자치, 산업과 경제성장, 민족운동과 사회운동, 문화와 예술, 종교와 교육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어 11~15권은 수원 토박이의 생애 경험과 정체성, 이주민의 정착, 노동문화, 아파트 주민 등 수원만의 정체성을 기록했다. 

    시사를 20권으로 압축한 수원시의 인구는 120만명에 육박한다.

    2000년대 시·군사 편찬이 활발했던 경기도를 살펴봐도 간행물 권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인구 143만여명의 광주시는 9권으로 발간했다. 또 인구수 50만명대의 경기도 안양시와 시흥시 시사는 각각 8권과 10권으로 만들어졌다. 지난 2018년 완성된 강원도사도 24권으로 소요 예산은 약 36억원이었다. 반면 40권을 간행하는 춘천시 인구는 아직 30만명을 돌파하지 못했다. 

    춘천시사편찬위원회의 A위원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초반 회의에서부터 20권도 많다는 지적이 나왔는데 점점 늘어나 40권이 됐다”며 “정량적으로도 두 배 많은 수인데 춘천의 인구, 시 예산 규모로 놓고 비교하면 더 큰 차이가 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자료집만 10권⋯자료 중복 등 예산 낭비 우려

    춘천시가 지난달 21일 시의회에 제출한 2023년 예산안은 1조6009억원이다. 이 예산안에는 내년 춘천시사 편찬을 위한 9526만6000원도 포함됐다.

    시 관계자는 “다른 지역 사례를 보면 1권 제작에 1억원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확인돼 이같이 편성했다”며 “총사업비 추정예산액은 40억원”이라고 밝혔다. 시의회 복지환경위원회는 8일 열리는 제322회 정례회에서 춘천시사 편찬을 포함한 문화환경국 2023년도 당초 세입‧세출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심의한다.

    최근의 시사편찬 경향은 자료집을 발간하는 대신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형태다. 자료집 발간이 필요할 경우 1~2권으로 축소하고 있다. 하지만 춘천시사의 발행 권수의 증가는 사료집(자료집)이 주요 원인이다. 

    춘천시사는 △제1부 사료집 △제2부 시대사 △제3부 분야사로 나누어 총 40권으로 목차를 구성했다. 사료집 구성 부분에서 다른 지역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이 중 제1부인 사료집은 모두 20권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사료집이 모두 11권이다. 또 사서·전적·관보·문서가 2권, 신문 자료 8권, 잡지 1권 등이다. 일제강점기 신문 자료만 해도 7권에 달한다.

    반면 경기도 가평군, 과천시, 안산시 등은 사료집을 부록 등의 형태로 1권만 발행했다. 군포시도 역사신문을 별책 1권으로 꾸렸으며, 수원시와 화성시도 자료 목록집은 1권뿐이다. 옛 문서나 사진집 등을 포함해도 3권 남짓이다.

     

    춘천시사편찬위원회가 사료집 7권을 일제강점기 신문 자료로 포함한 가운데 올해 초 오픈한 춘천디지털기록관에서 '춘천'을 검색하면 색인 된 일제강점기 기사 일부를 볼 수 있도록 해놨다. (사진=춘천문화원 춘천디지털기록관)
    춘천시사편찬위원회가 사료집 7권을 일제강점기 신문 자료로 포함한 가운데 올해 초 오픈한 춘천디지털기록관에서 '춘천'을 검색하면 색인 된 일제강점기 기사 일부를 볼 수 있도록 해놨다. (사진=춘천문화원 춘천디지털기록관)

    춘천시사편찬위도 자료집 발간 형태에 대해 고민했다. 제2차 편찬회의록을 보면 사료집의 발간 방법을 도서로 발간할지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할지에 대한 논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사료집 발간 여부와 방법은 3차 편찬 회의에서 주요 안건으로 다뤄졌다.

    3차 회의에서 한 위원은 “사료집 발간 방법은 이용자 처지에서 본다면 당연히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방법이 좋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라며 “사료 관련 데이터베이스는 이미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와 같은 사례가 있어서 홈페이지 형태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고 언급했다.

    시사편찬 성공 사례로 꼽히는 또 다른 지역인 화성시 관계자는 사료집 발간을 극구 만류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경기도사 편찬 사례를 들며 사업이 중간에 종료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정일 화성시청 문화유산과 역사진흥사업팀장은 “경기도사가 신문기사 등을 검색해서 붙이는 자료집만 10여권 간행하다 사업이 종료됐다”며 “그래도 당시에는 관련 자료가 디지털화가 되어있지 않아 시민과 연구자 접근성이 떨어졌던 때라 의미는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은 전자책(e-book) 등으로 만들지 누가 인쇄물을 발행하냐, 종이 낭비”라며 “화성시사에 포함된 자료집 1권도 자료를 수록한 것이 아니라 시사에 사용된 자료를 목록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춘천시가 진행하고 있는 기존 사업과 유사해 예산이 중복으로 투입될 수 있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3차 편찬 회의에서는 사료집 발간이 기존 춘천학연구소 업무와 중복된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회의록에는 “춘천학연구소에서 춘천 DB (작업을) 하는데 굳이 여기서 별도로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봐요. 거기 포털을 얼마든지 시청 홈페이지에 연동시킬 수 있어서⋯.”라는 언급이 있다.

    하지만 업무가 중복되더라도 독자적인 비용이 투자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위원은 “춘천학연구소와 동질적인 일을 하니까 겹치지 않을 순 없겠죠. 중복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만약에 사료집을 간행하게 되면 춘천시사편찬위원회 이름으로 간행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려면 거기에는 독자적인 비용과 어떤 인력이 투자가 돼야 되지”라고 말했다.

    회의록에 언급되는 춘천학연구소의 DB는 올해 3월 오픈한 ‘춘천디지털기록관’인 것으로 보인다. 지역 기관과 개인 소장 기록물을 수집하고 이를 보존·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오픈에 앞서 3년간 준비했다. 현재도 관련 자료를 계속해서 수집, 올리고 있다. 자료와 서적, 사진 등을 검색해 볼 수 있고 옛 신문 자료도 볼 수 있도록 일부 번역 작업도 거쳤다. 

    이와 함께 회의에서는 사료집 수록 자료의 번역이 국사편찬위원회나 한국고전번역원 등의 기존 성과가 있더라도 새롭게 다시 번역하자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국고전번역원은 한국사를 연구·편찬하고 관련 문헌·고전 등을 번역하는 국가 전문기관이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윤수용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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