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이 사라진 학교와 학생인권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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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벌이 사라진 학교와 학생인권조례

    ■[칼럼] 한상혁 콘텐츠2국장

    • 입력 2022.12.01 00:01
    • 수정 2022.12.01 13:50
    • 기자명 한상혁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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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의 모 고교 학생 30여명이 교사로부터 얼차려 받는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사진=연합뉴스)
    강원도의 모 고교 학생 30여명이 교사로부터 얼차려 받는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사진=연합뉴스)

    얼마 전 강원도의 한 고등학생들이 교사로부터 얼차려를 받는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사진 속 남학생 30여명이 학교 건물 앞에서 단체로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었다. 인터넷 사용자 간에는 사진 속 이 장면을 놓고 ‘학대’냐 ‘훈육’이냐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 정도로 아동 학대를 운운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었다. 이 사진과 관련해 학교 측 해명에 따르면 사진 속 엎드려뻗쳐 한 아이들은 학급 급식 당번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주의를 주는 과정에서 1분 정도 엎드려뻗쳐를 했다고 한다. 이 사진을 올린 네티즌마저도 사실은 ‘똥군기’라면서 비판했을지언정 ‘학대’나 ‘학생인권침해’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학교는 이번 일을 아동학대 혐의로 시청에 신고했다.

    학교 현장에서 공식적으로 체벌이 금지되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얼차려를 주거나 때리는 일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필자도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매 맞은 적도 있고 매 맞는 걸 본 적은 수없이 많다. 대부분은 교사들이 훈육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때때로 체벌의 강도가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하는 적도 있다. 체벌을 가장한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 모든 체벌을 없애야 한다라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잠깐 얼차려를 하는 사진 한 장을 놓고도 학대냐 아니냐가 논란이 되는 상황에,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여파를 가져올 만한 사건이 진행 중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강원지부가 지난달 주민 조례 청구 형태로 ‘강원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나선 것이다. 주민 청구는 도민 6667명의 서명을 받으면 강원도의회에서 수리 여부를 결정한다. 이 조례 제정은 민병희 전 강원도교육감 시절인 2013년과 2015년, 2018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추진됐으나 학부모 등의 반대로 모두 무산된 바 있다.

     

    지난달 8일 강원학부모단체연합회가 강원도교육청에서 ‘강원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서충식 기자)
    지난달 8일 강원학부모단체연합회가 강원도교육청에서 ‘강원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서충식 기자)

    290여개 항으로 이뤄진 학생인권조례의 주요 내용은 학생인권의 정의를 규정하고, 학생인권위원회와 같은 기구들을 설치 운영하도록 하며,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경우 교장과 교사를 조사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위한 문제들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학생인권만을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투쟁적으로 옹호하는 나머지 학생들을 올바르게 지도해야 할 교사나 학부모의 교육권을 무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이 제8조에 규정된 ‘차별받지 않을 권리’다. ‘학생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본인이나 보호자의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국가 ⋯ 혼인 여부 및 형태, 임신 또는 출산, 임신 중단 여부 ⋯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연애 여부 및 대상, 학업성적, 직업,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직업 등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10조에서는 ‘위 열거한 사유를 이유로 혐오적‧차별적 언행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 36조(소수자 학생의 권리)에서는 ‘성소수자 학생, 일하는 학생, 임신·출산 학생, 학업중단위기학생 등 소수자 학생은 그 특성과 상황에 따라 요청되는 권리를 적정하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정이 지켜지지 않으면 학생인권옹호관이나 학생인권위원회가 조사해 적절한 조처를 하도록 할 수 있다(67조, 69조).

    학생인권조례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로 동성애나 임신·출산을 인권이나 성적 자기 결정권이란 이름으로 옹호하는 과정에서 청소년들에게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 성 관념을 주입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집회의 자유(13조) 정치활동의 자유(15조)를 보장한다는 조항으로 학생들을 정치세력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셋째로 더욱 심각한 근본적인 문제점은 학생인권조례가 기본적으로 학생은 ‘인권을 억압받는 존재’, 교사나 학교는 ‘학생인권을 억압하는 존재’로 보는 시선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 290개 항목 전체에 걸쳐 교사가 어떤 식으로 인권을 침해하는지, 그것을 방지할 방법은 무엇인지를 규정하고 있고, 학교뿐 아니라 ‘피해 학생의 동의 없이도’ 사건을 조사할 수 있는 학생인권옹호관(69조①)의 권한은 폭력적이다. 이걸 본 교사들이 ‘교사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 학생인권을 세우려다 교권이 무너진다’고 항의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학생인권도 중요하지만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길을 제시해 줄 교사들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잠깐의 얼차려마저도, 손바닥에 때리는 사랑의 매마저도 금지할 정도로 발전해 있다. 290개 항에 조목조목 학생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나열한 조례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학생인권이 무너져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학생인권조례가 없어도 학생과 교사가 서로 배려하면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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