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가려진 민생, 춘천 산업의 ‘마이너스’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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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쟁에 가려진 민생, 춘천 산업의 ‘마이너스’ 성적표

    ■[칼럼] 권소담 경제팀장

    • 입력 2022.11.24 00:01
    • 수정 2022.11.25 00:03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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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춘천 바이오기업이 만든 일명 ‘고래팩’이 화장품 시장에서 화제 몰이를 했다.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으로 중국인 관광객과 보따리 도매상에게 인기였다. 기세를 몰아 국내 유명 온라인 편집숍에도 진출했다. 시각 예술가와의 협업으로 디자인을 차별화했고, 마스크팩 자체의 밀착력이 높고 에센스 함량도 많아 춘천에서는 주목받는 상품이었다.

    지역의 경제팀 기자로서 화장품 대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후배에게 자랑스레 이 제품을 설명한 일이 있었는데, 후배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마케터 친구는 “평균 연령층이 높고 수도권과 생활양식이 다른 강원지역은 니치(niche) 시장인데, 대중 마케팅을 지향하는 대기업이나 소비자들이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했다.

    춘천 화장품 산업은 6년 연속 전년 대비 수출 규모가 증가하는 등 코로나19 팬데믹에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왔다. 그동안 지역의 유망기업을 소개하고, K-뷰티 열풍 속에 늘어가던 ‘메이드인 춘천’ 수출실적을 기사로 쓰는 동안 ‘불편한 진실’을 잊고 지내 온 것 같다. ‘큰물’에서 보기에 강원지역은 규모도 작고 특징적인 산업 경쟁력도 없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틈새시장에 불과하다는 것 말이다.

    10월까지 누적된 올해 춘천지역 화장품 수출액은 5432만9000달러(한화 약 735억원)다. 같은 기간 국내 화장품 수출 전체 실적 91억7457만8000달러(12조4059억원)와 비교하면 1%도 안되는 규모다. 엄밀하게 말해 빠른 성장 속도가 없었다면 그다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시장이다. 춘천시민들의 관심 속에 춘천 화장품 산업은 빠르게 증가했고 올해 수출 실적은 6년 전인 2016년(1304만4000달러)보다 4배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성장세도 올 들어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올해 4월까지는 춘천지역 관련 수출이 호조를 보였지만, 5월부터 실적이 악화하기 시작해 강달러가 본격화되며 6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화장품 누계 수출실적이 줄었다. 앞으로 남은 2개월간 지난해 연간 수출액(6937만9000달러)을 넘어설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국무역협회 강원본부는 중국 당국의 엄격한 방역 통제에 따라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화장품 등 소비재 수출이 감소한 영향을 주요 요인으로 분석했다.

    화장품뿐 아니라 전 품목과 산업으로 시선을 넓혀도 올해 춘천 산업계의 수출실적은 부진했다. 올 10월까지 춘천지역 기업의 누적 수출액은 2억7350만5000달러다. 전년 대비 31.6% 성장했던 지난해 수출실적(3억6152만달러)보다 10% 이상 위축된 성적표다. 세계 지도 속 춘천 산업 경쟁력의 현주소다.

     

    팬데믹에도 성장하던 춘천 산업계의 수출 실적이 올들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픽=이정욱 기자)
    팬데믹에도 성장하던 춘천 산업계의 수출 실적이 올들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래픽=이정욱 기자)

    중국 의존적인 수출, 연구개발 사업에 집중해 소비자 친화도는 낮고 공공 지원 의존도가 높은 수익 구조, 자본의 한계에서 오는 마케팅 역량의 차이 등 기업이 가진 취약점만의 문제는 아니다. 탄탄한 산업 생태계 조성보다는 사업 실적 올리기를 위해 단편적인 지원에 집중했던 지역 산업 정책의 낙제 성적표나 다름없다. 몇 년 전 유행했던 고래팩은 주요 소비층이던 중국인 관광객이 사라지자 이전만큼의 위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춘천의 한 화장품 기업 대표는 더 이상 공공기관 주도의 수출 박람회에 참가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창업 초기 박람회에서 만난 바이어에게 무료로 대량의 샘플을 보내 수출을 타진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끊겨 알아보니 현지에서 아는 사람이 없는 ‘유령 바이어’였다”고 말했다. 또 “미국 전문 매장에 지역 화장품 코너를 운영한다고 해서 물건을 보냈더니 동네 슈퍼마켓 수준의 매대에서 제품에 먼지만 쌓여가는 걸 보고 철수한 적도 있다”고 했다. 수출 시장 개척을 위한 기관 주도의 지원 사업이 얼마나 현장과 괴리가 크고 전문성이 떨어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중소벤처기업부는 ‘지역혁신 선도기업 100’을 선정해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로 추진되는 사업으로 혁신 역량과 성장 가능성을 가진 지역의 유망기업을 발굴해 주력산업 생태계와 지역 경제를 견인하는 앵커기업으로 육성하는 프로젝트다. 이 100대 기업에 선정된 강원도내 기업 7곳 중 강릉지역 업체는 3곳인 반면, 춘천 소재 기업은 화장품 제조기업인 ‘래디안’ 한 곳뿐이었다.

    강원지역 산업의 현실이 이러한데, 지자체와 의회의 관심은 온통 도청사 이전과 레고랜드에만 쏠려 있다. 기업이 바로 서야 지역에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소비가 생겨난다. 정쟁(政爭)으로 민생(民生)이 가려져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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