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한 갤러리에 ‘군상’이라는 100호 크기의 대작인 작품이 걸렸다.
해수욕을 즐기기 위해 빽빽이 몰려든 사람들을 표현한 그림이다. 화폭 위에는 땀인지 피인지 모를 물감들이 흐른다.
이 그림은 작가가 중국의 한 해수욕장 사진을 보고 느낀 인상을 담은 작품이다. 지난 2013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참사가 연상된다. 전시장에는 이밖에도 굴곡진 한국사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작품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갤러리를 채운 주인공은 조정태 작가다.
광주 민중미술의 대가로 강원도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등 기획전, 개인전 9회 등을 개최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사회구조 속에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집중하고 그 이면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작업을 해왔다.
최근에는 민중미술의 어법에서 서정적인 어법으로 작업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격변의 시대 속에서 몰두해 온 사회 비판적인 시각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시선은 서서히 자연으로 옮겨가고 있다. 대자연이 지닌 생명력과 무한함, 역사적 사건을 겪고 있는 소시민의 삶 등이 그의 작품의 소재가 됐다.
이번 초대전 ‘갈림길을 지나며’에서는 작가의 2013년 작품 ‘군상’에서부터 2022년 발표한 ‘적요’에 이르기까지 작품의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다.
사회와 자연, 인간에 대한 시선의 확장과 깊이를 가늠해보는 자리다. 전시장에는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작품 15점이 전시되고 있다. 모두 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다른 작가의 작품이 더해진 느낌을 전하기도 한다. 100호 대작인 ‘군상’ 시리즈를 제외하면 서정적인 감성의 작품들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작가는 특정한 사건이나 역사가 연상되도록 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별과 같은 오브제로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얼핏 보면 깊은 바다를 그린 풍경화 같지만, 희생자와 역사에 대한 깊은 애도가 담겨있다. 관람객들도 자연스럽게 각자 떠오르는 이들의 영원을 기도하게 된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13일까지 춘천 개나리미술관에서 열린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윤수용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