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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속화철도, 춘천의 미래? ‘빨대 효과’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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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고속화철도, 춘천의 미래? ‘빨대 효과’ 경계해야

    • 입력 2022.10.27 00:01
    • 수정 2022.11.09 14:15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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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는 도시 발전의 토대다. 미국 캔자스시티, 포틀랜드 같은 도시는 대륙횡단철도 이전에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지만, 철도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도시로 번성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에 따라 집값이 들썩이는 것도 그만큼 철도 인프라가 주민들의 삶을 바꿔놓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신화’ 속에 강원도민의 염원이었던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착공식이 열렸다. 1987년 대선 공약으로 철도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된 지 35년 만의 일이다. 서울에서 속초까지 단 1시간 39분, 춘천은 이 사이를 잇는 거점 도시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만연하다. 이 신화는 진실일까. 앞서 춘천은 ITX를 통해 지역의 인구와 돈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교통 인프라의 역설’을 겪었다. 신화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동서고속화철도 개통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서울 용산‧청량리와 춘천을 오가는 ITX 청춘은 2012년 2월 운영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나들이 오게 될 관광 수요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반대로 춘천시민들 역시 쇼핑을 위해 서울로 빠져나가며 골목상권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다. 명동의 옷과 귀금속 가게는 ‘용산 아이파크몰’과 ‘청량리 롯데백화점’에 단골을 빼앗겼다.

    ITX 개통 전후 춘천지역 지역내총생산(GRDP)은 2012년(5조5110억원) 대비 2013년(5조7990억원) 2880억원(5.2%) 증가했다. 그러나 경제 활동별로 살펴보면, 자영업계의 척도인 소‧도매업과 숙박‧음식점업 생산은 전년대비 각각 1.8% 및 2.2% 성장에 머물렀다. 숙박‧음식점업은 오히려 전년 성장률(3.3%)보다 1.1%p 하락했다. 춘천 경제가 규모의 성장을 이뤘지만, 정작 풀뿌리 경제 주체의 부흥 효과는 미미했다는 의미다.

    당시 GRDP 성장은 공공 행정‧국방‧사회보장(20.7%) 분야가 주도했다. 공공 분야의 지역 경제 기여도는 커지고 있지만, 춘천에 자리 잡은 각 공공기관의 ‘강원본부’와 ‘강원지사’는 승진을 앞둔 직원들이 지역 근무 점수를 따기 위해 스쳐 가는 ‘꿀 보직’ 자리가 된 지 오래다. 이들은 기관에서 제공하는 사택에 거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서울‧경기에 있는 자택에서 출퇴근한다.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착공으로 지역 경제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교통 인프라 개선으로 인한 빨대 효과의 부작용을 대비해야 한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 착공으로 지역 경제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교통 인프라 개선으로 인한 빨대 효과의 부작용을 대비해야 한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서울로 향하는 철도는 결국 ‘서울 집중화’의 지름길이 됐다. 대도시가 주변 중소도시의 인구와 경제력을 빨아들이는 ‘빨대 효과(straw effec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춘천 역시 교통 인프라가 좋아질수록 지역 자본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역외유출 규모가 커지고 있다.

    강원지역 1인당 지역총소득(GRI)과 지역내총생산(GRDP)을 비교해보면 갈수록 심해지는 자본의 역외유출 상황이 드러난다. GRI는 특정 지역에서 주된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거주자가 생산활동에 참여한 대가로 받은 소득의 합이고, GRDP는 일정 기간 정해진 경제구역 내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격 합계다. 두 값의 차이를 통해 부가가치가 얼마나 밖으로 빠져나가고 들어오는지를 추산할 수 있다.

    ITX 개통 전인 2011년에는 1인당 GRI 2021만3000원, 1인당 GRDP 2208만8000원으로 GRDP 대비 GRI 값은 92%에 달했다. 그러나 가장 최근 자료인 2020년 시점 상황을 살펴보면, 1인당 GRI 2889만1000원, 1인당 GRDP 3202만6000원으로 이 비율이 90%로 떨어졌다. 값이 100%보다 크면 소득 순유입, 작으면 소득 순유출을 뜻하는데 그만큼 춘천지역 소득의 외부 유출 규모가 2011년 당시보다 커졌다는 뜻이다.

    같은 기간 1인당 GRDP는 993만8000원(45.0%) 증가했으나 1인당 GRI는 867만8000원(42.9%) 늘어나는데 그쳤다. 소득이 생산 성장률을 밑도는 것은 커지는 산업 규모에 비해 지역 정주 인구의 소득 성장이 제자리걸음이라는 의미다. 직주 분리에 따른 소득유출의 결과다. 기차와 전철을 타고 통근하는 이들은 정주 인구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총조사 자료를 보면, 서울에 거주하면서 춘천으로 통근하는 12세 이상 인구는 2525명에 달한다. 경기도 거주자도 2938명 수준이다.

    ITX 개통 10년. 관광객 유입 효과도 분명 있었지만, 부작용도 피부로 느껴진다. 통학하는 학생이 늘자 텅 비어버린 대학가 상권, 반수의 성지가 된 강원대는 춘천주민들이 체감하는 현실의 문제다. '춘천가는 기차'는 "5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낭만의 상징으로만 남아선 안 된다. 동서고속화철도가 완공되는 2027년, 춘천은 철길을 따라 스쳐가는 도시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관광산업이 발달하는 만큼 능력 있는 인재들이 지역에 거주하며 살 수 있도록 정주 여건 개선에도 힘써야 할 시점이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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