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없어도 의무 설치⋯‘골칫거리’된 전기차 충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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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차 없어도 의무 설치⋯‘골칫거리’된 전기차 충전기

    아파트·공중시설에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 의무 규정
    주차난 속 전기차 구역만 '텅텅', 내연기관 차주 '불만'
    공간 쪼개기로 인한 갈등, 설치 비용 등 민간에 부담
    인프라 강제 구축, "자동차 기업 이윤 공고화" 지적도

    • 입력 2022.10.21 00:02
    • 수정 2022.10.24 00:11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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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주차까지 할 정도로 주차난이 심한데, 전기차 구역만 자리가 텅텅 비었습니다.”

    19일 오후 10시 퇴계동의 한 아파트. 이 아파트 주차장에 놓인 전기차 충전 구역 7개 가운데 1개 에서만 ‘진짜’ 전기차가 충전 중이었다. 2개는 비어있었고, 나머지 4개에는 일반 휘발유 차량이 주차 중이었다. 친환경자동차법에 의해 전기차 충전 구역에 일반 내연기관 차량이 주차할 경우 지자체는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 아파트의 주차대수는 세대당 0.73대로 만성 주차난에 시달린다. 그런데도 100세대 이상 규모 아파트에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법 때문에 ‘전기차 없는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됐다. 주민 A씨는 “안 그래도 주차공간이 부족한 곳에 정부가 강제로 전기차 주차구역을 강제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10시 춘천 퇴계동의 아파트 내 전기차 충전구역에 내연 기관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해당 구역에 주차된 차량 중 1대만이 정상적인 충전을 위해 주차한 전기차였다. (사진=권소담 기자) 
    오후 10시 춘천 퇴계동의 아파트 내 전기차 충전구역에 내연 기관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해당 구역에 주차된 차량 중 1대만이 정상적인 충전을 위해 주차한 전기차였다. (사진=권소담 기자) 

    정부가 전기차 도입을 앞당기기 위해 아파트나 공공건물, 공중이용시설 등에 전기차 충전소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면서 여러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전기차 충전 구역은 비어 있고 일반 내연기관 차량은 주차할 곳이 부족한 상황이 대표적이다. 한 대당 300만원이 넘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 비용을 시민이나 민간 기업에 떠넘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친환경자동차법에 따라 100세대 이상의 아파트나 주차대수 50대 이상인 공공건물 및 공중이용시설은 의무적으로 전기차 충전시설 및 전용 주차구역을 설치해야 한다. △제1‧2종 근린생활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 △판매시설 △운수시설 △교육연구시설 △운동시설 △업무시설 △숙박시설 △위락시설 △자동차 관련 시설 △방송통신시설 △관광휴게시설 등 거의 대부분의 시설이 의무 설치 대상에 포함된다.

    기존에 지어진 건물이라면 공공기관은 내년 1월27일까지, 공중 이용시설은 2024년 1월27일까지, 아파트는 2025년 1월27일까지 전기차 충전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새 건물의 전기차 충전기 의무 설치 비율은 5%이고, 이미 지어진 공중시설에도 2%의 의무 설치비율을 규정했다. 

    주차난으로 갈등이 큰 기존 아파트나 민간 시설에서는 전기차 충전시설이 갈등의 씨앗이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세주 대한주택관리사협회 춘천지부장은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할 경우 안전성 문제가 거론되다 보니 지상에 충전시설을 설치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배전이나 케이블 설치를 위해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춘천시청 지하주차장 전기차 충전구역에 설치된 주차금지 안내문. 전기차 충전 구역에 전기차가 충전시간을 초과해 주차(급속 1시간, 완속 14시간)하거나 내연기관 차량이 주차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사진=이정욱 기자)
    춘천시청 지하주차장 전기차 충전구역에 설치된 주차금지 안내문. 전기차 충전 구역에 전기차가 충전시간을 초과해 주차(급속 1시간, 완속 14시간)하거나 내연기관 차량이 주차할 경우 과태료가 부과된다. (사진=이정욱 기자)

    대형마트, 영화관, 근린시설 상가 등 민간업체가 전기차 충전 시설 설치를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 부담도 크다. 조달청 나라장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전기차 완속 충전기 구입 비용은 7kW 기준 1대당 290만~380만원 정도다. 1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가진 기존 민간 공중이용 시설이라면 2% 의무 설치비율에 의해 2대의 전기차 충전시설을 갖춰야 한다. 관리비용은 제하더라도 충전기를 구입하기 위한 비용만 최대 760만원이 드는 셈이다. 200대의 주차시설이 있는 건물이라면 1520만원을 들여 4대를, 300대의 주차시설이 있는 건물이라면 2280만원을 들여 6대를 각각 설치해야 한다.

    춘천의 한 마트 관계자는 “기업이 사업 목적을 위해 구축한 주차시설인데, 수요자가 요구해서도 아니고 정부가 의무적으로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전기차를 생산하는 대기업이 책임져야 할 인프라 보급을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떠맡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충전기 업체들이 신규 설치에만 급급하고 사후 관리에는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춘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2~3년 전 설치한 전기차 충전기의 내구성이 떨어져 최근 관리업체에 점검을 요청했지만, 업체에서 요즘 신규로 충전시설을 설치하는데 급급해 설치 이후 관리가 형편이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겉보기에 치중해 보여주기 식으로 전기차 인프라 확대를 강제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비영리 스타트업을 이끄는 김하종 오늘잇다 대표는 “전기차 전용 충전시설을 설치하는 비용은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업이 지불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전기를 생산하는데 화석연료가 사용되고,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데도 오염물질이 배출된다는 점에서 전기차가 진짜 친환경이라고 볼 수 있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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