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직까지 배고픈 강원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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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직까지 배고픈 강원 문화예술

    ■ 한승미 문화팀장

    • 입력 2022.09.29 00:01
    • 수정 2022.11.09 14:16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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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문화재단에서 지난 8월까지 13명의 정규직 직원이 퇴사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문화재단에서 지난 8월까지 13명의 정규직 직원이 퇴사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어쩌자고 여길 왔을까. 돈도 안 되는 걸.”

    필자는 문화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 수업은 재밌었지만, 대학 졸업이 다가오자 자연스럽게 취업 걱정이 생겼다. 물론 혼자만의 고민은 아니었다. 졸업장을 받아든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제각각 일자리를 찾아갔다. 전공을 잘 살려 취업하는 경우는 문화재단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지역 소재 문화재단의 취업 문턱은 꽤 높았다. 신입 정규직 채용이 있었지만 사실상 경력직들의 경쟁에 가까웠다. 계약직들이 정규직 채용에 지원하는 경우가 다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렵게 입사했을 자리이건만, 최근 문화재단 직원들이 계속해서 이탈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강원문화재단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정규직 직원 13명이 퇴사했다. 단순히 더 나은 직장을 찾아 나섰다고 보기엔 어려운 수치다. 최근 급증한 직원 퇴사는 수년 전부터 지속된 문제로 주로 다른 지역 기초 문화재단으로의 이직이 많았다. 재단에서 역량을 쌓은 문화 행정 인력들이 유출되는 것이다. 이탈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낮은 임금이었다.

    지방 공공기관 통합공시 클린아이에 따르면 2020년 강원문화재단 직원의 1인당 평균 연봉(정규직 총괄)은 3856만6242원이다. 기본급과 복리후생비, 초과 근무수당, 인센티브 성과급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같은 기간 춘천문화재단 직원의 1인당 평균 연봉(정규직 총괄)은 5128만9511원이다. 강원문화재단이 광역 문화재단임에도 기초 단위인 춘천문화재단의 급여가 1272만3269원 더 많았다. 강원도와 비슷한 인구 규모의 광주광역시문화재단의 직원 평균 연봉은 4937만752원, 직원들이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이유다. 

    상대적 빈곤은 재단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강원문화재단은 현재 신입 직원을 7급으로 채용하고 있다. 과거 직원들은 8·9급으로 채용됐다. 수년 만에 고연차 직원과 신입 직원 간 임금 역전 현상이 예고되고 있다.

    재단 노사협의회 등의 처우 개선 요구가 잇따르자 김필국 강원문화재단 대표는 최근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전 직원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 대표는 메시지에서 “직원 이직 원인은 처우 불만과 하위직급 중심으로 기존 신규 직원의 역차별 그리고 채용 시 낮은 경력산정 반영이라고 보고 있다”며 기존 직원들의 역차별 해소를 위해 경력산정 기준을 시대에 맞게 현실화하고 기존 직원도 입사 당시 기준으로 경력을 재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강원문화재단의 정원은 57명이지만 현재 44명이 근무하고 있다. 정원 대비 13명이 부족한 상황인 만큼 직원들도 업무 고충을 호소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재단 관계자는 강원문화재단 직원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강원도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도에서 출연금과 보조금 등을 지원받는 출연기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 출자·출연기관이 모두 악조건 속에서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도 출자·출연기관인 강원도문화재연구소의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정규직 총괄)은 5095만6943원, 강원디자인진흥원은 5042만1147원으로 강원문화재단보다 1000만원 이상 많다.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 기관의 경우 현 상황에 맞게 연봉 출발대가 결정됐지만, 강원문화재단은 여전히 과거 연봉 책정 기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하지만 퇴사 이유가 급여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 기관 종사자만 작성할 수 있는 직장인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를 보면 강원문화재단에 대한 평가는 5점 만점에 1.7점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평가자들은 커리어 향상 1.6점, 업무와 삶의 균형 2.6점, 급여 및 복지 1.3점, 사내 문화 1.7점, 경영진 1.1점으로 각각 평가했다. “20년 넘은 기관인데 자체 사옥 없음” “지역 내 유사 기관 대비 낮은 급여” “커리어·전문성 향상 기대 X” 등 리뷰 내용만으로 재단의 현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상위기관인 강원도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한 직원은 작성한 리뷰 ‘속 빈 강정 같은 곳’에서 “아무리 출연기관이라지만 민간의 자율성은 1(하나)도 발휘할 수 없고 A부터 Z까지 눈치 보아야 하는 슈퍼을 신세”라며 한탄했다. 지난 3월의 한 작성자도 공무원 개입이 많아 업무 융통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도 메시지에서 “도의 정책 기조에 따라 예산, 인력, 조직이 변화하는 것은 모든 출연기관의 운명”이라며 “당분간은 현재의 결원 상태에서 업무를 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강원문화재단 설립·운영 조례에 의하면 재단은 지역 문화예술인 복지증진 사업 등을 수행한다. 예술인들이 문화로 배고픈 일이 없도록 관련 예산을 배분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지역 문화 전문 인력 양성도 이들 기관 목표 중 하나다. 하지만 정작 재단 직원들은 낮은 처우로 고통받고 훈련된 직원들은 타 지역으로 이탈하고 있다. 잇따른 퇴사를 막기 위해서는 경영 주도성과 독립성 확보가 시급하다.

    배가 고파야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헝그리 정신’이 문화 행정에까지 적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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