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바람직한 어려움, 시험’을 시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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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바람직한 어려움, 시험’을 시험하자

    • 입력 2022.09.30 00:00
    • 수정 2022.09.30 17:39
    • 기자명 서원혁 화천 사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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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원혁 화천 사내초등학교 교사
    서원혁 화천 사내초등학교 교사

    산업과 교육은 공진화(共進化) 관계에 있다. 미래세대들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진적 사회 변화를 대비해 역량을 함양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교육부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의 비전으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내세워 왔다.

    바람직한 비전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이 진행되는 기간 교육부에서 발표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결과를 살펴보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해가 지날수록 어휘력이나 각 교과의 기초 지식 총량이 취약해져 수업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학교 현장의 걱정스러운 토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역량 함양은 고사하고 기초 지식조차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채 도리어 퇴보하는 모습은 우리 교육 현장에 무엇인가 ‘결핍’이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대표적인 결핍은 ‘지식교육의 약화’, 평가와 학습의 기제로서 ‘시험의 부재’다. 벌써 10년이 넘도록 학교에서 지식교육은 주입식 교육이라는 굴레를 씌워 경시됐고, 시험은 ‘서열화, 과도한 경쟁, 사교육 조장’의 죄목을 뒤집어쓴 채 금기시 돼왔다.

    과연 지식교육과 시험은 무가치한가? 인지과학자 대니얼 윌링햄은 ‘생각은 정보(사실적 지식)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창의적 사고, 비판적 사고와 같은 고차원적인 역량은 결국 지식을 결합하고 활용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사실적 지식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기억함으로써 역량은 함양될 수 있다. 지식교육이 결코 경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영재 및 창의력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인 김경희 교수는 ‘틀 밖에서 놀게 하라’는 저서에서 창의력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구성하고 개선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결국 창의력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서로 연결될 지식이 풍성하고 탄탄하게 습득되어야만 한다. 학교에서 사실적 지식을 더욱 부지런히 가르쳐야 할 이유다. 교육과정의 방향성을 이상적으로 설계해두고도 미래사회 핵심역량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를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은 지식교육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시험’ 시스템이 사망한 것은 학생의 인지적 발달을 촉진할 강력한 무기를 버린 것과 다름없다. 시험은 학생에게 지식의 습득 여부를 확인하게 해줄 뿐 아니라 학습의 과정으로서 적극적 사유를 통해 지식을 인출하고 활용하는 장을 마련해준다.

    인지적 정보처리이론은 학습이 발생하는 과정을 ‘입력-저장-인출’의 3단계로 설명한다. 또 지식이 장기적으로 기억되려면 분석하고 추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 시험은 인지적 영역에서 ‘인출 과정’을 훈련하게 도와준다. 학생들은 시험을 통해 지식을 효율적으로 습득하고 더 오래 기억하는 훈련을 반복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역량과 창의력을 발현할 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된다.

    물론 뜻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편적 지식을 무조건 암기하고 주입하는 교육이 문제라는 반성은 타당하다. 하지만 반대로 지식교육을 무용한 것처럼 경시하고 객관화된 시험을 없앤 지금의 학교 현장, 우리 아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한 반성도 타당하지 않을까.

    이제 해묵은 서열화 논쟁은 접어두고 학습의 과정으로서 시험을 자유롭게 풀어주자. 어느 학교, 어떤 교사가 지금과 같은 학교 문화 속에서 객관화된 시험을 통해 아이들을 줄 세우고 서열화하겠는가. 평가의 방법은 다양하며 교사가 교육적 맥락에 맞게 질적, 양적으로 적절하게 선택해 운영하면 된다. 이제 객관화된 시험을 통해 학습 부진 내용과 요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맞춤형 학습 코칭을 함으로써 학생 개별 성장을 도와야 할 것이다.

    2020년 EBS 다큐프라임 ‘시험을 시험하다’는 모든 교사가 시청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제임스 클레멘스 고등학교의 심리학 교사 블레이크 하버드는 매시간 시험을 통해 인출학습을 한다. 학생들은 시험을 통해 “정보(지식)를 기억하는 데 도움을 받고, 틀리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고 했다. 학습의 과정으로서 시험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는 시험을 통한 인출학습으로 “학생들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게 되어 모르는 내용을 훨씬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UCLA 교수인 엘리자베스 비욕은 “인출을 할 때 느끼는 어려움이 오히려 학습에 도움이 되고 이는 바람직한 어려움”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확인하고 인출함으로써 성장하고 발달할 권리가 있다. 그렇게 획득한 지식은 고차원적 역량 함양과 창의력 함양으로 확장될 것이다. 이제 학습의 과정으로서 ‘바람직한 어려움, 시험’을 시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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