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16일의 댓글왕 연*열
실시간 순위 (최근6시간)
[최광익의 교육만평] 도로명 주소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최광익의 교육만평] 도로명 주소

    • 입력 2022.09.20 00:00
    • 수정 2022.09.21 00:15
    • 기자명 책읽는춘천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2014년 1월부터 우리나라는 지번 주소가 아닌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지번 주소는 기본적으로 토지에 부여하는 정보로 토지의 분할, 합병에 따라 지번 배열이 무질서하고, 한 지번에 여러 가옥이 밀집할 때 개별 가옥 표시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동안 한국, 일본, 태국 정도가 지번 주소를 사용했다.

    도로명 주소는 시군구, 읍면은 기존과 같지만 동과 리 대신 길 이름을 사용한다. 도로를 중심으로 입구에서 볼 때, 왼쪽에 있는 건물은 홀수, 오른쪽에는 짝수 번호를 부여한다. 도로 폭이 40m가 넘거나 8차선 이상일 때 ‘대로’, 왕복 2~7차선 도로는 ‘로’, 그 외 도로는 ‘길’로 표시한다. 도로명 주소를 보면 도로의 폭과 찾고자 하는 건물의 위치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그리고 도로 입구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도로명 주소에서 중요한 것은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보통 도로명은 설명과 기념의 두 가지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중앙로’ ‘시장로’ ‘북한산로’ ‘남산로’는 위치를 설명하는 이름이고, ‘을지로’ ‘충무로’ ‘세종로’ ‘퇴계로’는 위인들을 기념하는 이름이다. 도로 이름을 자신의 이익과 관련짓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도로명을 둘러싸고 갈등이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는 이유다.

    도로에 숫자를 쓰는 경우는 미국에만 있는 현상이다. 뉴욕시는 초창기 격자무늬(grid)로 시를 정비한 후, 도로에 이름 대신 번호를 붙였다. 가로로 난 도로에는 1번부터 155번까지 숫자를 붙이고 ‘스트리트(street)’로, 세로로 뻗은 도로는 1번부터 12번까지 숫자를 붙이고 ‘에비뉴(avenue)’라 이름 붙였다. 수도 워싱턴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뻗은 거리에는 숫자를 붙이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난 거리에는 알파벳(A·B·C 등)을 붙였다. 여기에 덧붙여 각 주의 이름을 딴 거리를 만들었다.

    도시마다 유명인의 이름을 붙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위인 이름을 딴 거리는 세종로, 충무로, 을지로, 원효로, 퇴계로, 충정로 등 6개였다. 그 뒤로 전국의 모든 도시에서 애국자, 시인, 예술가, 체육인들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용산구 유관순길(이태원 공동묘지에 유관순 열사 묘가 있었다고 함), 은평구 정지용길, 원주 조엄로, 춘천 김유정로, 전주 견훤로, 수원 박지성로, 천안 봉주로 등이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데는 논란이 있다.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있고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다. 1977년 테헤란 시장 방한 당시 우호관계의 상징으로 서울특별시 한 곳과 테헤란시 한 곳에 서로의 이름을 바꿔 이름짓기로 하였다. 똑같은 이유로 울산에는 ‘장춘로’, 중국 장춘에는 ‘울산로’가 있다. 장춘은 길림성 성도로 자동차 산업이 발달했고 많은 대학과 연구소가 위치하고 있다. 2004년 울산과 장춘 자매결연 10주년을 기념해 도로가 생겼다.

    최근 컴퓨터과학과 빅 데이터 기법으로 거리 이름을 정량분석해 인간행동과 문화적 트렌드를 파악하는 거리경제학(Street Economics)이라는 학문도 생겨났다. 이 분야 학자들은 거리에 헌정된 이름의 성별, 국적, 해당 인물의 직업과 생존 시기를 분석해 도시의 특징을 밝힌다. 최근 연구에서는 오스트리아 빈이 전체 거리 54%에 여성 이름을 붙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런던 40%, 뉴욕 26%, 문화예술 도시라 자부하는 파리는 고작 4%에 불과했다.

    주소는 왜 필요한가? 응급 상황, 택배, 우편물 수취뿐만 아니라, 은행 구좌 개설, 아이의 학교 입학, 투표를 위해서 필요하다. 물론 주소가 개인의 편의나 복지를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소는 사람을 찾고, 감시하고, 세금을 부과하고, 우편을 통해 딱히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주소의 중요성이 증가하면서, 주소 없는 사람들의 불이익도 늘어나고 있다. 주소는 집이 아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정체성과 같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주소가 없으면 각종 복지에서 제외되어 노숙자, 부랑자, 떠돌이, 히피로 대우받기 쉽다. 복지를 위해 모든 사람에게 주소를 갖게 할 수는 없을까.

    왓쓰리워즈(what3words)는 주소를 만드는 영국의 스타트업 기업이다. 이 기업은 전 세계를 가로세로 3m의 정사각형으로 분할하고, 정사각형 한 개당 세 단어를 배정했다. 이제 지구상의 모든 장소에는 왓쓰리워즈가 생성한 개별 주소가 있다. 주소는 왓쓰리워즈 홈페이지나 무료로 제공하는 앱으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왓쓰리워즈는 한국어는 물론 벵골어, 핀란드어, 타밀어, 줄루어, 아프리칸스어를 포함 36개 언어로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필자가 사는 집 주소는 자유(freedom), 중식(lunch), 주주(shareholder)이다. 과연 미래의 주소로 기능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