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한잔이 기후 위기 앞당긴다면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위스키 한잔이 기후 위기 앞당긴다면

    • 입력 2022.09.15 00:01
    • 수정 2022.11.09 14:16
    • 기자명 권소담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이 되면 제철의 석화와 곁들여 먹을 ‘보모어(Bowbore)’ 한 병을 산다.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라섬에서 만든 싱글몰트 위스키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껍질 속에 든 생굴에 싱글몰트를 끼얹어 먹고 ‘환상적’이라고 표현했던 그 맛을 느끼고 싶어서다. 하루키는 위스키 여행 수필집에서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굴 맛과 아일라 위스키의 그 개성 있는, 바다 안개처럼 아련하고 톡톡한 맛이 입안에서 녹아날 듯 어우러진다”고 감상을 적었는데, 독자로서 궁금하지 않을 리가.

    그런데 얼마 전 ‘빨간약’(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삼킨, 고통스럽지만 현실을 바로 보게 하는 알약)을 먹고,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됐다. 이 깊은 위스키의 풍미가 엄청난 양의 탄소 배출을 통해 나왔다는 것. 스카치 중에서도 특히 아일라 위스키는 강한 피트(peat)를 뿜어낸다. 소독약, 탄 냄새 등으로 표현되는 ‘피트’는 이탄(泥炭)을 태운 연기가 맥아에 스며들어 완성된다.

    이탄지대는 주요 식수원이며, 탄소 흡수원으로 기능한다. 올해 들어 템스강 수원이 8㎞ 후퇴하고 최고 기온이 관측 이래 사상 처음 40도를 넘는 등 기후 위기 현상이 나타나자 영국에서도 이탄지대 파괴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영국 위스키는 2019년 기준 수출액이 50억 파운드(한화 8조원)에 달할 정도로 부가가치 높은 산업이다. 가뭄과 기후 위기로 인한 계절적 변화가 원료인 보리 수확과 물 공급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염려해 위스키 증류소들은 탄소 배출 줄이기에 나섰다.

    일례로 브룩라디(Bruichladdich) 증류소는 수소 에너지를 통해 2025년까지 증류 공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또 해수면의 상승‧하강 운동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조력 발전 등 아일라 섬에서 얻을 수 있는 재생 가능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기후 위기를 염려한 위스키 애호가들은 이처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힘쓰는 증류소의 제품을 구매하는 등 대안적인 방식을 고심하고 있다.

     

    무분별한 소비와 1회용품 사용으로 인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기후 위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무분별한 소비와 1회용품 사용으로 인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기후 위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위스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취향과 소비가 환경을 파괴할 수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커피 소비를 감당하느라 열대우림지역 생태계는 커피 원두 생산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 7000ℓ가 쓰인다.

    이미 익숙해진 생활 습관을 바꾸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아예 새 물건을 사지 않을 수는 없으니, 기후 문제에 관심있는 시민들은 조금이라도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애쓴다. 재활용 원단이나 친환경 면사를 사용한 청바지나 물 사용을 최소화한 티셔츠 같은 것들이다. 페트병에 든 생수 대신 물을 끓여 먹거나 최소한 다회용 필터 정수기를 사용하는 노력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춘천지역 공공기관에서는 여전히 페트병을 사용해 시민단체들의 지적을 받고 있다. 공공기관은 국무총리 훈령 ‘1회용품 등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에 따라 공공기관 청사 또는 회의‧행사에서 △1회용품 △페트병에 넣은 먹는 물 및 음료수 △풍선 △우산 비닐 등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당장 춘천시 홈페이지 ‘통하는 시장실’ 사진기사만 살펴봐도 1회용품 사용의 흔적이 수두룩하다. 춘천시 감염병대응 보건의료협의체 회의 현장의 페트병, 권리 중심형 중증 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 워크숍 당시 책상 위에 놓인 테이크아웃 잔 등이다.

    13일부터 시작된 춘천시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도 ‘1회용품 등 사용 줄이기 실천지침’은 지켜지지 않았다. 기획행정위원회와 경제도시위원회 의원석 하단에 생수가 놓여 있었다. 이들이 생수 몇 병 분량의 플라스틱을 사용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지자체의 행정사무 전반을 비판적인 눈으로 짚어내고 대안을 제시해야 할 시의원들이 기후 변화에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시의회에 지속해서 1회용품 사용을 지적하는 민원을 제기했지만 변함없이 페트병을 사용하고 있다”며 “시민을 대표해 집행부의 잘잘못을 따져야 할 시의회에서 자원순환과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후 위기는 이제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과 경제의 영역이 됐다. 지난달 집중 호우 피해로 강원지역에 책정된 복구액만 1300억원이 넘는다.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전기가 끊기자 포항 제철소는 49년 만에 가동을 중단했다. 경북 포항의 태풍 피해액은 2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모든 비극은 기후를 위협하는 인간의 행동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필자도 올해는 위스키를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번 행정감사에는 시의원들의 자리에도 페트병 생수가 사라져 있길 기대한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