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익의 교육만평] 24절기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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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의 교육만평] 24절기 인문학

    • 입력 2022.09.06 00:00
    • 수정 2022.09.06 10:49
    • 기자명 책읽는춘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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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얼마 전 TV의 일기예보 진행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은 모기의 입이 돌아간다는 처서인데요.” 조금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 처서에는 왜 모기의 입이 돌아간다고 했을까 궁금해졌다. ‘처서(處暑)’는 글자 그대로 ‘더위를 처치한다’는 뜻이다. 처서를 기점으로 더위가 물러가고 찬 기운이 사방에 퍼진다. 우리 조상들은 차가운 곳에서 잠을 자면 찬 기운이 몸에 스며 ‘풍’을 맞는다고 여겼다. 대표적인 것이 눈과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구안와사(口眼喎斜)’다. 오늘날 말로 푼다면 ‘안면신경마비’다. 사람도 이러한데 모기도 갑자기 찬 기운을 견디자면 쉽지 않을 것이다.

    요즘 우리가 잊고 사는 24절기는 인문학의 보고(寶庫)다. 아주 옛날에는 달의 모양에 따라 날짜를 계산하는 음력을 먼저 사용했다. 음력의 단점은 날짜는 알기 쉬우나 계절은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 결과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계절과 기후를 알 수 있는 24절기가 만들어졌다. 24절기는 양력을 기준으로 하며, 태양의 위치에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 6개 절기로 나누어진다.

    봄 절기는 입춘(立春),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다. 입춘은 양력 2월 4일경이다. 입춘을 기점으로 15일마다 절기가 이어진다. 절기의 이름은 농사를 위해 만들어졌기에 농사에 필요한 행위들과 관련돼 있다. 입춘은 ‘봄에 들어서다’, 우수는 ‘비가 와서 물이 고이다’, 경칩은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나 벌레 등이 놀라 깨다’는 뜻이다. 경칩은 ‘놀랄 경驚’, ‘벌레 칩蟄’자를 쓰는데, 개구리나 벌레들이 놀라는 이유는 비가 오기 시작하면서 천둥을 치기 때문일 것이다. 춘분은 ‘봄을 나누다’ 즉, 봄의 한복판으로, 곧이어 하늘이 맑아지고‘(청명), ‘곡식을 위한 비’(곡우)가 내리기 시작한다.

    여름 절기는 입하(立夏), 소만(小滿), 망종(芒種), 하지(夏至), 소서(小暑), 대서(大暑)이다. 여름에 들어서면(입하), 만물이 생장해 조금씩 차기 시작하고(소만), 곧 곡식을 파종하는 시기(망종)가 온다. 망종은 ’수염’ 가진 곡식을 심거나 베는 시기이다. 곧 벼를 파종하고 보리를 수확하는 시기인 것이다. 파종이 끝나면, 진짜 여름(하지)에 이르게 되고, 작은 더위(소서)가 계속되다가, 마침내는 ‘큰 더위’(대서) 즉 찜통더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가을 절기는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한로(寒露), 상강(霜降)이다. 가을에 들어서면(입추) 더위가 물러가고(처서), 곧 흰 이슬(백로)이 생기는데, 이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 대기 중의 수증기가 뒤엉켜 이슬이 맺히기 때문이다. 가을의 한복판(추분)을 지나면, 찬 이슬(한로)이 맺히고, 곧 서리가 내린다(상강).

    겨울 절기는 입동(立冬), 소설(小雪),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이다. 겨울에 들어서면(입동)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소설), 점점 더 큰 눈(대설)이 내리게 된다. 결국 진짜 겨울에 이르게 되면(동지), 서서히 추위가 시작되어(소한), 살을 에는 맹추위(대한)로 이어진다.

    각 절기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우수 경칩에는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말은 아무리 추운 날씨도 이때쯤은 누그러진다는 뜻이다. 비가 와서 못자리 물이 풍부해 곡식의 생장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 든다”고 했다. 뿔이 녹을 정도로 몹시 덥다고 하여 “대서에는 염소 뿔이 녹는다”고 했고, 씨 뿌리는 시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망종에는 발등에 오줌 싼다”고 했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말이 있는데, 한식은 절기는 아니지만, 한식 다음날이 청명이기 때문에 하루 차이로 별 의미가 없으므로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가을에는 추어탕을 먹는데, 추어(鰍魚)는 미꾸라지로 가을에 통통하게 살찌는 민물고기다. “한로가 지나면 제비는 강남 가고 기러기가 돌아온다”는 것은 계절의 변화에 따른 철새의 이동을 말한 것이다. “벼는 상강 전에 베어야 한다”는 것은 벼가 서리를 맞으면 이삭이 부러져 수확에 지장이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왔다 얼어 죽었다”는 말은 소한이 더 춥다는 의미이다. “동지 때 개딸기”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말이다.

    24절기는 농경문화의 산물로 중국에 의해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요즘은 TV 일기예보를 중시하는 시기이지만, 24절기가 품고 있는 옛사람들의 지혜와 해학을 다시 새겨보는 일도 후세 교육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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