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음악으로 지역을 잇다, 노래에 빠진 ‘효자동 할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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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플러스] 음악으로 지역을 잇다, 노래에 빠진 ‘효자동 할모니’

    춘천 효자동 주민들 ‘춘천 디스코’ 음원 발매
    지역을 잇는 음악, 사라지는 마을 공동체 회복
    매인 보컬 '효자동 할모니' 음악 통해 세대 통합
    나이‧사회적 통념 등 틀 깨고 도전해야 ‘행복’

    • 입력 2022.09.05 00:01
    • 수정 2022.09.06 04:08
    • 기자명 이정욱 기자·한재영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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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나이 듦을 피할 수 없지만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나이라는 틀에 갇혀 자신감을 잃거나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균 연령 80이 넘은 춘천의 세 할머니가 즐거운 삶을 위해 지역주민과 ‘춘천 디스코’라는 음원을 발매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슈플러스 이번 시간에는 음악으로 지역과 소통하고 세대를 아우르는 효자동 할모니 3인방을 만나 이야기 나눠보았다. <편집자주>

     

    “폴폴 봄 내음 나는 시시 신나는 춘천~, 너와 나 함께 노래해요. 나이 많아도 OK 아직 어려도 OK~!”

    ▶ 우리는 할머니가 아니라 ‘효자동 할모니’ 
    가수 이한철 씨가 총감독을 맡고 지역주민과 함께 만들었다는 ‘춘천 디스코’가 지난 8월 15일 각종 음원 사이트에 공개됐다. 2살 아기부터 주부, 대학생, 직장인 등 주민 15명이 함께한 작업은 두 달간 음반 작업과 뮤직비디오 제작으로 이뤄졌다. 이 중 핵심 보컬인 김춘자(85세), 유상희(80세), 김부임(78세) 할머니 3명을 MS투데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오랫동안 효자 2동을 지키며 살아온 세 할머니는 평균 연령 여든이 넘었지만, 자기소개부터 우리는 마을 주민과 세대를 아우르고 모은다는 의미를 담은 팀 ‘효자동 할모니’이지 ‘할머니’가 아니라고 합창했다.

    ▶ 노래 ‘세대를 넘어 소통하고 지역을 잇는 기회’ 
    처음 방문한 스튜디오가 낯설고 어색해 앉자마자 물을 찾던 세 할머니는 역시 가수였다. 음악 작업을 한 소감을 묻자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었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고마워서 하라는 대로 하다 보니 어느덧 모이는 날을 기다릴 만큼 즐거웠다고 말했다. 잠재되어 있던 흥이 깨어나 몸과 마음에 활력도 생기고 이웃들과도 더 다정하게 화합하는 기회가 됐다며 노래를 한 것이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영광스럽고 좋은 추억이라고 밝혔다. 

    MS투데이 스튜디오를 방문한 '효자동 할모니(왼쪽부터 유상희(80), 김부임(78), 김춘자(85))'가 '춘천 디스코' 음원 발매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정욱 기자)
    MS투데이 스튜디오를 방문한 '효자동 할모니(왼쪽부터 유상희(80), 김부임(78), 김춘자(85))'가 '춘천 디스코' 음원 발매에 대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이정욱 기자)

    ▶ 행복한 춘천의 삶과 이웃의 정 담은 ‘춘천 디스코’ 
    노래 ‘춘천 디스코’는 춘천사회혁신센터와 나우네트워크의 공동창작 프로젝트로 탄생했다. 뮤직(Music)과 로컬(Local) 두 단어를 합성한 ‘뮤지로컬’로 이한철 총감독이 작곡한 원곡에 주민들이 직접 쓴 가사를 담아냈다. 악보도 제대로 볼 줄 모르던 할머니들은 “종이를 주고 써보라고 해서 끄적여 봤다”라며 가사를 쓴 소감을 수줍게 얘기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과의 추억을 담백하게 담아낸 ‘효자동 좋아~ 우리 이웃이 좋아~’ 등의 가사는 들썩들썩한 디스코 풍 리듬과 어우러져 음악으로 지역을 연결하겠다는 뮤지로컬의 의미를 완벽하게 살려냈다.

    ▶ 힘겨웠던 삶, 서로 보듬고 치유   
    “폴폴 봄 내음 나는 시시 신나는 춘천~, 너와 나 함께 노래해요. 나이 많아도 OK 아직 어려도 OK~!”
    노래 한 곡조 해달라는 요청에 여전히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는 할머니들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라는 왕언니 김춘자(85세) 할머니는 시누이만 5명인 집의 외며느리였다고 한다. 추석 등 명절만 되면 쌀을 직접 찌고 치대서 떡을 만드는 등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하고 호된 시집살이에 꿈이라는 단어는 사치였다고 한다. 손끝이 야무지고 빨라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는 유상희(80세) 할머니와 몸은 늙어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라는 김부임(78세) 할머니도 가부장적 시대를 살아오며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여성으로서 고단함이 더 많았다고 회상했다. 젊지만 힘들었던 그 시절도 나이를 먹은 지금도 그들에게 꿈보다 확실한 건 서로가 든든한 응원군이자 조력자라는 것이다. 김부임 할머니가 노래 한 소절을 부른 후 2001년 뇌경색 진단을 받아 목 상태가 좋지 않다고 말하자 두 언니는 “부임이가 뇌경색 있다고 맨날 자랑하는데 노래는 제일 잘해”라고 받아치며 아픈 막냇동생을 위로하고 보듬었다.

    '춘천 디스코'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사진=춘천사회혁신센터 제공)
    '춘천 디스코'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사진=춘천사회혁신센터 제공)

    ▶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도전하라 청춘아~”
    100세 시대에도 인생의 반환점을 훌쩍 넘어 음악이라는 낯선 장르로 세상의 문을 두드린 할머니들.
    네 번째 스무 살이 아닌 진짜 스무 살을 되돌린다면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을 던졌다. 김춘자 할머니는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는 자유로운 청춘을 갈망했다. 어려웠던 시절 형편이 좋지 않은 집에서 태어나 학교에는 가보지도 못했다며 마음껏 공부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유상희 할머니와 김부임 할머니는 청춘으로 돌아간다면 마음껏 공부하고 서핑과 수상스키 등 다양한 도전을 꿈꿨다. 여자라는 이유로 제약받고 살림만 했던 시대를 벗어나 청춘의 특권을 누리고 싶다는 할머니들의 작은 소망은 지금의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과 열정으로 도전하라’라는 메시지 같았다. 

    ▶ 행복한 추석 ‘모두가 즐거워야 진짜 명절’
    노래를 통해 이웃의 따뜻함과 행복을 느끼고 있는 할머니들에게 더 큰 힘을 주는 것은 역시 가족.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묻자 ‘함께’의 의미를 강조했다. 호된 시집살이를 물려주지 않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을 수 있도록 아들, 딸, 며느리 등의 구분 없이 같이 일하고 함께 쉬며 서로 배려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옛말의 의미를 모두가 함께 느낄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춘천 디스코' 음원을 발매한 '효자동 할모니'가 MS투데이 스튜디오에서 모두가 행복한 추석을 기원했다. (사진=이정욱 기자)
    '춘천 디스코' 음원을 발매한 '효자동 할모니'가 MS투데이 스튜디오에서 모두가 행복한 추석을 기원했다. (사진=이정욱 기자)

    ▶ 노래로 찾은 청춘 ‘뭐든 할 수 있어’
    2집 앨범도 내고 더 많은 활동과 봉사도 하며 지나고 싶다는 효자동 할모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며 인생의 주체로 삶을 개척하고 마을 구심체이자 공동체 회복에 앞장서는 할머니들의 즐거운 반란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대담=[한재영 국장]
    촬영·편집=[이정욱·박지영 기자 cam2@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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