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단체협약 때문에 학력평가 못 치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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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조 단체협약 때문에 학력평가 못 치른다니

    • 입력 2022.09.01 00:01
    • 수정 2022.11.09 14:16
    • 기자명 한상혁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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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혁 콘텐츠 2국장
    한상혁 콘텐츠 2국장

    강원도교육청은 최근 올해 2학기부터 도입하기로 한 ‘강원형 학업성취도평가‘ 준비에 분주하다. 신경호 교육감은 취임 일성으로 ‘학력 향상‘을 내세웠고, 도내 학교의 학업 수준을 정확히 평가하는 것은 그 첫 번째 수순이다. 9월 1일 자로 출범하는 교육감직속 ‘더나은교육추진단‘이 11월 말 첫 시행을 목표로 세부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시작 전부터 만만찮은 장애물에 직면했다. 정확한 학력평가를 위해 강원도 전체 학교들에서 시행하려 했으나 어려운 상황이다. 전임 교육감 시절 강원도교육청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강원지부가 맺은 단체협약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체결된 이 협약에는 ‘도교육청은 도교육청 및 교육지원청 주관의 학력고사를 실시하지 않는다‘(45조①)라는 내용이 있다.

    이 단체협약 때문에 강원형 학업평가는 도내 학교 전체가 아니라 시험을 희망하는 일부 학교만 치르는 ‘반쪽짜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전교조 입김이 센 학교에서는 시험에 찬성할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정확한 학력평가가 이뤄지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정확한 상황 파악 단계라 이에 대해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며 “전교조 강원지부와 접촉하며 해결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의 말에서 전교조 단체협약이 마치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성역‘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 법은 근로자 보호를 위해 단체협약에 법률상 효력을 갖게 하지만 이 협약의 범위가 근로자 임금이나 근로조건을 넘어 경영 방침에까지 미치는 경우에 대해서는 줄곧 논란이 벌어진다. 전교조는 이를 이용해 10년 전, 전국 최초로 강원도 초등학생들의 중간·기말고사를 폐지한 전력이 있다. ‘도교육청은 초등학교에서 학기 초 진단평가 및 중간·기말고사 등의 일제 형식의 평가를 근절하고 학생 성장 중심의 평가가 정착되도록 지도한다(35조⑥)’라는 조항에 따라서다.

    이 조항은 전임 민병희 교육감 시절인 2012년 10월 26일 도교육청과 전교조가 맺은 단체협약에 최초로 포함됐다. 이로 인해 11월 기말고사를 앞둔 시점에 강원도 352개 초등학교에 “중간·기말고사를 치르지 말라“는 공문(公文)이 배포됐다. 강원도를 시작으로 전국 진보교육감이 비슷한 단협을 체결하면서 전국 초등학교에서 중간·기말고사가 전격 폐지됐다.

    지난 12년간 재임했던 민 전 교육감은 전교조 강원지부장 출신이다. 민 전 교육감 재임기를 거쳐 전교조는 현재 노동조합의 설립 취지를 넘어서 도 교육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상위기관처럼 행세하고 있다. 단체협약은 교육청에 ‘초등학교 각종 수상자 선정이 학업성적이 아닌 다양한 선정 기준에 의해 이뤄지도록(35조⑨)’ 하라고 지시한다. ‘자율형 사립고 신규지정을 추진하지 않는다(50조①)’ ‘학기 중 기숙형 학원의 입사를 전면 금지하도록 조례를 제정(50조⑤)’ ‘도교육청 및 학교에서 주관하는 각종 경시대회를 폐지(53조①)’하라는 지침을 내린다. ‘2021년 상반기 내 교육감 선거 연령을 16세 이하로 낮추기 위해 시도교육감협의회와 교육부에 안건을 제출한다(58조⑧)’ ‘청소년 노동권 보호를 위한 노동인권교육을 중학생과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확대 실시한다(62조⑥)’는 조항은 교육정책의 범위마저 넘어선 무언가로 읽힌다.

    주지하듯이 강원도 학생들의 학력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매년 수능시험에서 강원도 학생들은 전국 최하위 성적을 받고 있고, 매해 1000명 넘는 강원도 학생이 강원대 수시 지역인재 전형에 거의 합격하고도 수능 최저학력을 맞추지 못해 탈락한다. 필자가 지난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춘천에서는 중고등학교 진학에 맞춰 타 시도로 떠나는 학생들로 청소년 인구가 감소하는 중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같은 사태의 기반에 지난 10여년간 만연한 ‘학력 경시 풍조’가 있다고 지적한다. 도 단위 학력평가를 ‘일제고사’나 ‘줄세우기식 교육’이라 부르는 프레임이 그것이다. 이런 시각은 학력평가, 반배치고사, 경시대회, 아침·야간·방학 자율학습, 보충수업을 반대하는 전교조식 교육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학생을 학교가 나서서 뜯어말리는 풍조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생은 마음껏 공부하고, 교사는 마음껏 가르치는 학교를 만드는 게 교육청의 목표”라고 했다. 학교의 당연한 모습이 지상과제가 된 것이 전교조 출신 교육감과 전교조가 학교를 좌지우지한 지난 10년간 일어난 일이다. 춘천시민을 비롯한 강원도 유권자들은 이런 학교를 바꾸기를 바라는 마음에 신경호 교육감에게 투표했다. 시민 위임을 받은 교육감이 학력평가 한번 치르는데도 전교조 눈치를 봐야 한다는 건 민심에 대한 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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