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선의 예감] 정책은 어림짐작 아닌 숙성된 판단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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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의 예감] 정책은 어림짐작 아닌 숙성된 판단이어야

    • 입력 2022.08.12 00:01
    • 수정 2022.08.13 00:19
    • 기자명 용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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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비상(非常)이다.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선은 후덥지근한 공기다. 폭염과 폭우가 수시로 교차하고 있다. 그런 탓에 피부의 끈적임, 발목에 감기는 빗물이 여간 성가시지 않다. 연일 퍼붓는 빗줄기 탓이다. ‘기상특보’라는 TV 화면의 붉은 글씨가 오싹하게 한다. 뉴스 앵커의 “역대급 폭우”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아수라장이다.

    비단 날씨만이 아니다. 집안에, 사무실에 틀어 앉아 검색하는 세상사도 심상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연일 곤두박질하는 대통령 지지율, 국정운영 부정평가 상승이 여론조사 결과다. 게다가 대타로 지명받은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취임 34일 만에 자진해서 사퇴했고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설익은 정책, 학제 개편안을 제시한 지 열흘 만에 그 막중한 부총리직에서 물러났으니 대한민국의 딱한 교육 실상을 곱씹게 된다. 게다가 새 정부 출범 100일을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보건복지부 장관은 여전히 공석이다. 그런가 하면 수시로 목도하는 여야 정당들의 내홍도 혀를 차게 한다. 여당, 집권당인‘국민의 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했다. 하지만 순항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잡음이 쉽사리 가시지 않을 낌새여서다.

    왜 이 지경인가? 시선을 나라 밖으로 돌려봐도 긴장을 늦출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 미사일을 서슴없이 퍼붓는 우크라이나사태, 초긴장 상황을 방불케 하는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 미국의 가파른 금리 인상…. 온통 악재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으니 더 걱정이다. ‘불행은 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네 탓, 남 탓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다. 궁색한 상황이 걷히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어서다. 따지고 보면 ‘귀신도 몰라보는 소신’이 몰고 온 난국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만에서 기인한 갈팡질팡이다. 유기적으로 관계하는 생태 구조를 간과한, 사려 깊지 못한 판단들이 엉키고 설켰다.

    우선은 민생이다. 불편하고 곤궁한 형편이어서 실망이다. 일시적 침체라고 위안하자면 형편이 필 것이라는 전망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연일 드러나다시피 하는 정부 당국자들의 부적합한 면면은 국민의 심기를 불편케 하고, 내놓는 정책은 어설픈 수준의 갈팡질팡 격이어서 기본을 되짚어 보게 된다. 그래서 불안하다. 기세등등해야 할 정권 초기에 이 지경이고 보면 반환점을 돈 이후의 형국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부, 지자체의 새로운 임기가 시작됐으니 분명 희망적이어야 한다. 국면전환, 터닝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당면한 문제, 경제위기를 딛고 일어설 묘책이 필요하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다. ‘행동경제학’이 거역할 수 없는 대세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이 심리학자에게 안긴 것이 웅변한다. 프린스턴대학교 교수 대니얼 카너먼, 애덤 스미스로 대변되는 고전 경제학 프레임을 뒤엎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다. 심리학과 경제학을 융합한 연구로 불확실성 속에서의 상황판단과 의사결정을 안내했다. 인간의 휴리스틱(Heuristics, 어림짐작의 판단)과 편향성을 주시한 그는 ‘인간은 비합리적 편견·편향에 의해 오류를 범하는 존재’라고 단언했다. 카디먼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 체계는 두 가지, ‘시스템 1’과 ‘시스템 2’다. 직관에 의해 ‘빠르게 생각하는 자동 판단’과 이성을 토대로 ‘느리게 생각하는 숙고 판단’이다. 문제는 인간의 95%가 ‘시스템 1’에 따라 판단,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한 분야에 치우친 전문가들이 행동 설계의 오류를 범할 확률이 높은 것은 물론이다. 직관이 초래하는 편향, 부작용이다. 그 불합리함을 줄이기 위해 부단하게 ‘시스템 2’를 작동해야 한다. 빠른 판단을 위한 습관화, 숙련, 체화를 위해서다. 궁극적으로는 ‘시스템 1’이 제대로 작동해야 문명사회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카디먼의 ‘적대적 협동 연구’라는 개념, ‘전망이론(Prospect Theory)’도 인간의 두 가지 사고 체계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한다. 정부·지자체의 정책적 판단, 개인의 삶도 비합리적인 오류를 줄이는 환경·행동 설계의 치밀함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이다. 더 나은 국가, 더 좋은 사회, 더 지혜로운 시민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대니얼 카디먼의 주저 「생각에 관한 생각(원제 : Thinking Fast and Slow)」의 갈무리 문구는 이렇다.

    “비평가들이 세련되고 정당하다고 믿을 때, 그리고 자신의 결정이 최종적으로 드러난 결과보다는 만들어진 과정으로 평가되리라 기대할 때 비로소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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