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익의 교육만평] 말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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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의 교육만평] 말의 상처

    • 입력 2022.07.26 00:00
    • 수정 2022.11.09 14:35
    • 기자명 책읽는춘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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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글을 통한 재난을 필화(筆禍)라 하듯이, 말로 인한 재앙을 설화(舌禍)라 한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구설수(口舌數)’를 크게 경계하였다. 또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사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중시하였다.

    말로 인한 논란을 생각해 보면, 먼저 어떤 말이 가지는 본질적인 ‘뜻’이나 ‘의도’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에는 말 자체에 이미 차별적이고 계급적인 의미를 가진 말이 많다. 요즘 의미로 보면 ‘미망인’이나 ‘과부’라는 표현은 성차별의 극치를 보여주는 말이다.

    ‘미망인(未亡人)’은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었던 중국의 순장제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과부(寡婦)는 ‘부족한 여자’라는 의미인데, 남편이 없으면 온전치 못하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사회적 신분이 높을수록 미망인이라는 말을 쓴다는 사실이다. 가끔 신문에 재벌가가 상(喪)을 당했을 때 이 표현을 볼 수 있다.

    ‘폐하’ ‘전하’ 등은 신분제 사회에서 쓰던 용어다. 이러한 용어 중 ‘각하’라는 말은 최근까지도 사용되었다. ‘폐하(陛下)’에서 ‘폐(陛)’자는 ‘섬돌 폐’이다. 섬돌이란 황제가 집무하는 용상에 오르는 돌계단이다. 그래서 ‘폐하’라는 표현은 황제가 너무 지체가 높아 바로 부르지 못하기 때문에, ‘저 돌계단 아래 와 있습니다’라고 간접적으로 부르는 표현이다.

    그동안 대통령에게 붙였던 ‘각하’는 조선시대 신분 경칭 중 가장 낮은 호칭이다. ‘각(閣)’은 정승이나 판서가 업무를 볼 때 사용한 건물을 부르는 이름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을 신분제 시대 호칭인 ‘각하’로 부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그냥 ‘대통령님’으로 족하다.

    장애를 지칭하는 말이 문학작품 제목으로 사용된 경우가 많다.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1935),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1925),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8) 등이 그 예다. 1975년 개봉된 영화 <바보 용칠이>, 한때 유명세를 탔던 공옥진의 <병신춤> 등 예술작품에서도 장애와 관련된 말들이 정제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작가들이 제목으로 쓴 이유가 있겠지만, 요즘 시각으로 보면 바른 언어 사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도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 사고를 담은 내용들이 많았다. 어렸을 때 배운 <유관순 노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이 노래에서 유관순을 지칭하는 ‘누나’라는 표현이 남성중심 사고의 한 표현이라고 인식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여학생들도 모두 유관순을 ‘누나’라고 불렀다. 교과서에서 외가(外家)가 모두 ‘시골’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 것도 성차별적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말 자체에 배어 있는 성차별, 계급의식 등을 시정하기 위해 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 사용(Politically Correct)’ 운동이 전개되었다. 미국에서 PC운동은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자는 취지에서, 일반적으로 여성, 흑인, 성 소수자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동이나 경멸적인 언어사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 본래 여성 승무원만을 가리키는 스튜어디스(stewardess)는 남성 승무원을 가리키는 스튜어드(steward)와 함께 비행승무원(flight attendant)으로 바뀌었다. 전문적인 직업을 지칭하는 단어에 흔히 붙는 -man은 전문직이 남성들만의 영역이라는 성차별적 의미를 주기 때문에 중립적인 단어인 person으로 바꾸거나 아예 다른 형태로 바꾸었다. 즉, anchorman(뉴스진행자)과 chairman(회장, 의장)은 anchorperson과 chairperson으로, fireman(소방관)은 firefighter로 사용되고 있다.

    서양속담에 ‘말로 인한 상처가 칼에 베인 상처보다 더 깊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빈부, 지역, 계층, 이념 갈등이 심한 곳에서 대부분 갈등은 말에서 비롯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언어사용은 모든 예절의 기본이다. 막말, 거친 말, 차별적이고 계급적인 말의 사용을 금지하고, 바르고, 친절하고, 공손한 언어사용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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