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세상을 보다⋯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촉각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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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끝으로 세상을 보다⋯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촉각 전시’

    문화소외인 위한 만지는 전시 열려
    비장애인은 안대를 쓰고 감상 가능
    춘천 상상마당에서 오는 17일까지

    • 입력 2022.07.16 00:01
    • 수정 2022.07.17 01:11
    • 기자명 오현경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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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진학교 학생이 신리라 작가의 '오후 4시'를 손끝으로 감상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인턴기자)
    명진학교 학생이 신리라 작가의 '오후 4시'를 손끝으로 감상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인턴기자)

    "눈을 감고 작품을 감상해 보세요."

    춘천 공공미터 협동조합은 17일까지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갤러리에서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단체전을 개최한다. 시각장애인 등 문화 소외인들을 위한 촉각 전시다.

    이번 전시는 ‘만지지 마세요. 눈으로만 보세요’라고 경고하는 다른 전시장의 안내문이 시발점이 됐다. 이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관람할 수 있는 전시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9명의 작가는 작품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작업 전 춘천의 특수학교인 명진학교를 방문해 시각장애인의 시선에 대해 배웠다.

    작가들은 전시를 일종의 ‘배리어프리(사회적약자들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로 치환해 예술 분야 감상의 한계성 극복을 시도했다.

     

    비장애인 관람객이 안대를 쓰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인턴기자)
    비장애인 관람객이 안대를 쓰고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인턴기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시인 만큼, 작품 감상을 보조하는 여러 장치가 있다. 우선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이어지는 안내 밧줄을 잡고 벽을 짚어가며 이동해야 한다.

    밧줄이 끊기고 이어지는 곳에는 나무 위 점자로 작가와 작품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시 작품 역시 손에 들고 마음껏 만져볼 수 있다. 손을 더듬어 가며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한다.

    비장애인은 안대를 쓰고 전시를 체험할 수 있다. 기자가 안대를 쓰고 체험해보니 시각 하나를 차단했을 뿐인데도 모든 것이 무섭게 느껴졌다.

    전시장 깊은 곳 작은 방에서는 외부의 소리가 차단돼 공기의 흐름까지 예민하게 느껴지고 한 발자국도 쉽게 나아갈 수 없었다. 밧줄이 길어지는 마지막 구간은 눈을 뜨고 걸을 때는 2초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수십 미터를 걷는 듯 멀게 느껴졌다.

    우선 밧줄을 따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효숙 작가의 ‘안녕하세요? 이효숙입니다!’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작가는 시각장애인과 소통할 때는 대뜸 용건을 말하지 말고, 먼저 목소리로 본인의 소개를 해야 한다고 배웠던 기억을 떠올려 작품 이름을 지었다.

     

    시각장애인 관람객이 이효숙 작가의 '안녕하세요? 이효숙입니다!'를 만지며 감상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인턴기자)
    시각장애인 관람객이 이효숙 작가의 '안녕하세요? 이효숙입니다!'를 만지며 감상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인턴기자)

    여러 가지 종류의 천을 이어서 만든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질감과 모양의 천이 어우러지듯 저마다 다른 색을 가진 우리도 어우러지도록 한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 안에 소외된 사람들이 느낄법한 불편함까지 녹여서 우리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했다.

    촉각과 동시에 청각도 느낄 수 있도록 바삭한 소리가 나는 비닐 종류나 두꺼운 종이 등을 붙이기도 했다. 이 작가는 느낌이 다른 여러 가지의 천을 직접 눈을 감고 만져가며 골랐다. 무대의상에서 자주 보던 스팽클 천도 특이하다. 거꾸로 만질 때는 느낌이 또 다르다.

    실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일회용품이나 유리병, 장난감 등이다.

     

    관람객이 지유선 작가의 '미지의 세계'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인턴기자)
    관람객이 지유선 작가의 '미지의 세계'를 감상하고 있다. (사진=오현경 인턴기자)

    지유선 작가의 ‘미지의 세계’는 우리에게 익숙한 여러 사물을 일부 변형해서 새로운 느낌을 준다. 배달 용기 그릇과 페트병 밑동처럼 익숙한 물건이라도 반으로 갈라놓으니 쉽게 알아보기 힘들다.

    눈을 감고 만졌을 때는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다리가 여섯 개 달린 동물 역시 특정 동물에 한정하지 않았다.

    지 작가는 “모호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만지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여행자가 되어 우리가 모두 새롭게 어우러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김창수 명진학교 교감은 전시장을 찾아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전시의 취지에 맞게 단순히 눈으로만 보지 않고 여러 가지 형태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여기 와서 깨달을 수 있었다”며 “아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기회의 문을 열어주신 작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승미 기자·오현경 인턴기자 singme@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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