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젊은춘천] 풍화된 것들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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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완의 젊은춘천] 풍화된 것들의 가치

    • 입력 2022.07.06 00:00
    • 수정 2022.07.06 18:05
    • 기자명 낭만농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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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완 낭만농객 대표
    김수완 낭만농객 대표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마을에는 마을 주민의 생활양식을 보존한 채 5년째 방치된 집이 있다. 이 집에 들어가 곳곳을 열어 보고 들춰 보면서 관객은 양지리 주민의 생활양식을 알게 된다. 집주인이 먹었을 케이크와 옥수수, 덩굴이 자라 찢어진 벽지, 서랍장 위에 죽은 벌레까지 공간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도 이 집은 매일 조금씩 풍화되며 진화하는 중일 것이다.

    이 기이한 집은 작품명 ‘전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아르헨티나 출신 영화 감독 에이드리언 빌랄 로하스의 작품이다.

    “한반도에 가장 많은 군인과 가장 많은 지뢰가 있는 곳 비무장지대. 비무장지대의 역설은 전쟁의 위협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곳이지만, 군인들로 인해 보호받아 가장 안전한 곳이기도 하다. DMZ 비무장지대 마을의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TV 보며 졸고,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전 부쳐 먹고, 마실 다니고, 농사일을 한다. 전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의 시놉시스를 통해 알 수 있듯 감독은 마을 주민이 살아가던 공간과 생활양식을 영화 소재로 풀어내며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전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전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이 작품 공간에서 100m가량 걸어가면 마을의 공용 곡식 창고가 나온다. 한때 양지리 마을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예술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창고에서 전시하기도 했다. 슬레이트 지붕의 투박한 회색 창고는 예술가들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마을에 남아 그들의 예술혼을 간직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방치되며 천천히 풍화되던 양지리창고는 작년 말 공간 리노베이션의 일환으로 재구축됐다. 비바람을 맞으며 풍화된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를 개조했다. 양지리 마을에서 방치되던 창고는 현재 ‘프라이빗 영화관, 양지리창고’로 재탄생해 사람들을 불러오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피드백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는 뭔가 새로운 세계로 오는 것 같았대요. 너무 느낌이 좋았는데,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고르는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는 거예요. 온라인, 디지털 기기가 흐름을 망친 거죠. 원래는 양지리창고에 비치된 태블릿을 활용해서 손님이 자율적으로 OTT와 음악 플랫폼을 쓰도록 했거든요. 편리하긴 하지만 이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더 깊은 경험을 제공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리뉴얼에서는 아날로그 한 공간에 초첨을 맞추고 있어요.” [출처:㈜올어바웃/양지리창고 인터뷰 중]

    철원군 양지리 마을은 독특하다. 대한민국의 최북단 지역으로 외로워 보이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만큼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잘 보존할 수 있었다. 자연스러운 풍화로 이미 형성된 것들에 앞으로 더 긴 시간을 얹어 깊은 정체성을 형성할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재밌게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보존되던 마을의 지역성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첫 번째로는 예술가들이 찾아왔고, 두 번째로는 사업가 그리고 관광객들이 마을을 찾고 있다.

    양지리 마을이 잘 보존한 지역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오래된 것들이 낡고 촌스럽다고 이야기하지만, 오래된 것들만 가질 수 있는 속성이 있다. 오래된 것들에는 ‘시간’이라는 속성이 있다. 시간은 사람들에게 답을 주기도 하고 사람들을 숙성시키기도 한다. 평범한 시골 마을인 양지리 마을에 사람들이 하나둘 애정을 갖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칼럼을 쓰다 문득 2년 전 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때 한 어르신이 해주신 조언이 생각난다.

    “관계는 된장 같아서 시간이 들어가야 좋은 장인지 나쁜 장인지 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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